도로로 뛰어든 피범벅 여성…'기억' 되살린 최면수사[新경찰청사람들]
"법최면으로 내 병도 고쳐"…상처 공감해주는 역할도 중요
(서울=뉴스1) 송상현 유민주 기자 = 새벽 한 서울의 근린공원. 운동을 하고 있던 여성 A씨가 맨발로 도로로 뛰어들었다. A씨는 피를 흘리고 몸 여기저기에 상처도 있었다. 택시 기사가 발견한 덕분에 병원으로 실려 왔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A씨는 운동하러 나왔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 자신이 왜 상처를 입었는지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다. 주변 폐쇄회로(CC)TV와 유류품 등을 통해 용의자로 특정된 B씨는 범행 일체를 부인했다. A씨가 기억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막막한 상황에서 동원된 것이 최면수사(법 최면)다.
◇최면으로 피해자 범행현장 기억 떠올려…범행 부인하던 피의자는 구속
당시 A씨에게 최면수사를 했던 법최면 전문수사관 서울경찰청 이일호 경위(50)는 "A씨가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다행히 A씨는 최면 감수성이 매우 뛰어났다"고 말했다.
최면 과정에서 A씨는 범행 현장의 기억이 떠올라 자신의 피해 상황을 몸짓까지 이용하며 정확하게 재연했다. A씨는 운동 중에 B씨로부터 습격당해 풀숲으로 끌려갔고 몸 여기저기를 폭행당했다. 하지만 A씨는 끝까지 저항했고 다른 곳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B씨는 도망갔다. A씨는 반대 방향인 도로로 무조건 뛰었다.
이 경위는 이에 대해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 조직인 해마에서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들이 분비돼서 기억 형성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경우 최면으로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로 만들면 피해자가 현장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면에서 살아난 A씨의 기억으로 B씨는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될 수 있었다.
이 경위는 법 최면에 대해 "사건 현장에 해결의 단서가 없고, 공포나 당황 등으로 인해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만취 상태에서 블랙아웃(일시적 기억상실)이 돼 범죄 피해 또는 목격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활용된다고 했다. 하지만 피의자에 대해선 최면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피의자가 최면에 들어간 상태에서도 자신이 유리한 대로 작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위는 최면에 앞서서 의뢰인과 1시간 가까이 사전면담한다. 충분한 라포(상호신뢰관계)가 형성돼 의뢰인이 법최면 전문 수사관을 신뢰해야 최면에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면 수사는 한 번 시작하면 보통 4시간 정도 이어질 정도로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는 일이다.
◇범행 목격으로 우울증 겪었지만 최면 배워 극복…입양인 등 기억 찾아주고 싶어
순경 공채로 2002년에 입직한 이 경위는 초반 형사과 강력반에서 경찰 생활을 했다. 하지만 강력 사건 현장에서 살해 장면 등을 목격하면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학에서 전공한 물리학을 살려 과학수사 부서로 옮겼고, 2010년 법최면 전문 수사관 1기로 교육을 받으며 본격 최면 수사 전문가가 됐다.
이 경위는 법 최면을 배우면서 외려 자신이 건강해졌다. 이 경위는 "법최면을 배우면서 우울한 감정과 정신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며 "자기최면을 통해 담배도 끊었다"고 웃었다.
이 경위는 단순히 법 최면을 의뢰인이 겪은 범죄 현장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 사용하진 않는다. 이 경위는 "최면을 통해서 이 사람의 상처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감해 주고,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시도한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이 경위의 포근한 표정과 어조 덕에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어린 시절 입양 또는 실종으로 가족과 헤어지게 된 사람들의 과거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 최면을 활용한다. 이 경위는 "의뢰인들이 가족과 헤어진 것이 1960~1970년대인 경우인데 이 시절의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유튜브 등을 통해 공부도 한다"며 "이 사람의 생각을 같이 느끼며 함께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아직 가족을 찾은 케이스까지 이어진 경우는 없다"고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의뢰인들이 과거로 돌아가서 어린 시절 경험을 되살릴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해준다"며 미소를 지었다.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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