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니다

이학렬 금융부장 2023. 5. 15.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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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주식시장이 열리기 전 JP모건체이스의 퍼스트리퍼블릭은행(FRC) 인수가 발표됐다. 실리콘밸리은행(SVB)에 이어 FRC까지 미국 지방은행이 위기에 빠지자 시스템 문제로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미국 금융당국과 JP모건 등 민간 금융회사가 주말 내내 머리를 맞댄 결과다.

미국이 바삐 움직였지만 이튿날 국내 금융당국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금융위원회든 금융감독원이든 FRC 관련 회의를 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국내 금융권의 FRC 익스포저 점검도 없었다. "이미 JP모건이 인수하기로 해서 별도로 조사하지 않을 예정"이라는 게 금융당국에서 나온 말이다. 반면 불과 2개월전 SVB가 폐쇄됐을 때 금융위, 금감원은 각각 위원장, 원장 주재 임원회의를 열고 시장을 점검했다.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FRC가 SVB보다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덜하지도 않다. 일단 자산 규모는 4월13일 기준 FRC가 2291억달러로 SVB 1754억달러(지난해말 기준)보다 많다.

게다가 JP모건은 FRC 예금은 인수하지만 주식과 채권은 인수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용평가사인 S&P는 FRC 신용등급을 지난 3월15일 'A-'에서 'BB+'로, 나흘 후인 19일 'B+'로 잇따라 낮췄다. FRC는 3월초까지만해도 투자등급 은행채를 찍었던 곳이었던 셈이다.

물론 FRC 사태 이후에도 주식과 외환 등 국내 금융시장에는 큰 동요가 없었다. 이미 국내 금융시장은 세계적인 IB(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의 몰락에도 든든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위기의 내성화' 과정을 겪고 있는게 아닐까 우려된다. 국내 금융시장이 튼튼하다고 하지만 위기의 징조들은 서서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특히 체력이 약한 곳은 징조가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예가 저축은행 업계가 1분기 손실을 기록, 9년만에 적자전환했다는 점이다. 79개 저축은행들은 1분기 600억여원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말 예금금리가 갑작스럽게 뛴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저축은행은 금융권의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카드사도 고금리 불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분기 적자를 기록하진 않았지만 순이익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감소했다.

은행권도 안심할 순 없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는 순이익이 소폭 늘었지만 이자이익은 감소했다. 그동안 은행권의 버팀목이던 '이자장사' 역시 순탄치 않음을 보여줬다. BNK·DGB·JB금융 등 3대 지방금융지주 순이익은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가는 2021년 하반기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국은행도 그해 8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려 0.5%였던 기준금리는 2년도 안돼 3.5%로 3%포인트 올랐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세는 꺾였고 시장금리도 더이상 오르진 않고 있다. 하지만 '고물가', '고금리'는 이제 시작이다. 하반기엔 고금리, 고물가가 가져올 부실이 금융권을 본격적으로 덮칠 수 있다. 9월엔 코로나19 비상사태로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도 마무리된다. 이미 높아진 연체율이 가파르게 뛸 수 있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오랫동안 지속된 위기 의식으로 지칠 수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은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등 일명 'F4'의 일요일 회의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다. 과한 위기감 조성이 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별거 아니다'에 익숙해지면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 긍정적인 지표에 매몰되면 시각이 편협해지고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아직은 긴장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약한 고리 중 하나인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을 직접 챙기는 걸 계기로 신발끈을 다시 조이길 바란다.

이학렬 금융부장 toots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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