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빚어낸 회화적 풍경과 열정…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
춘천시향·박규희·김송현 협연
로드리고·차이콥스키 작품 무대
악보 없이 몰입력 높은 연주 펼쳐
앙코르 솔로곡에서도 긴 여운
“익숙하지만 만나기 힘든 선곡
떨림과 진심 밀어붙이는 에너지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적 무대”
젊은 연주자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노련함으로 다듬어진 음악도 좋지만, 청춘의 시기, 지금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순간이 현재에 담긴다. 음악은 시간성의 예술이고, 5월은 생명이 역동하는 계절이다. 지난 10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4회 호반음악제 ‘당신에게 청춘을(May the Youth be with you)’은 송유진 상임지휘자가 이끄는 춘천시립교향악단과 함께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피아니스트 김송현이 무대에 올랐다. 봄과 청춘의 도시인 춘천의 5월이 한국 클래식의 현재와 미래를 이끄는 연주자들의 에너지와 어우러졌다. 지난 해 베스트앨범, 올해 첫 라이브 앨범을 내는 등 앨범과 공연을 병행하며 명연주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박규희 기타리스트는 이날도 클래식 기타의 매력을 가감없이 전했다. 2002년생으로 오는 8월 부조니 국제콩쿠르 파이널 무대를 앞둔 김송현 피아니스트는 20대의 감성과 열정이 최대치로 어우러진 표현력의 정석을 보여줬다. 악보도 없이 머리 속에 담긴 음악에 집중하는 연주자들의 모습, 귀에 익숙하지만 평소 듣기 어려운 선곡에도 호평이 쏟아졌다.
■연주자 몰입도와 떨림 그대로 전달
춘천시향은 귀에 익숙한 비제의 ‘카르멘 전주곡’으로 활기차게 시작했다. 경쾌한 투우사의 노래와 함께 스페인의 풍경이 이어질 것을 암시했다. 이어진 로드리고의 기타를 위한 아랑후에스 협주곡에서는 붉은 드레스로 시선을 끈 박규희의 섬세한 연주력이 빛을 발했다. 벨기에 프렝탕 국제기타콩쿠르 등 9번의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경력답게 리듬과 멜로디를 자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주법으로 몰입력을 높였다. 하이 포지션에서도 단단했던 집중력이 상당했다.
토요명화 시그널 음악으로 유명한 2악장 메인 테마가 시작되자 오보에의 선명한 음색과 더불어 박규희가 그려내는 회화적 풍경이 펼쳐졌다. 3악장의 정겨운 스페인 춤곡에서는 기타라는 악기가 대중적으로 친숙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선명히 보여줬다. 앙코르 곡 ‘알함브라의 궁전 추억’을 통해 무대 위 떨림을 섬세하게 전하며 클래식 기타의 진수를 선사했다.
김송현 피아니스트가 협연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는 약 34분간 이어진 빠른 템포의 연주 속에 송유진 지휘자는 피아니시모를 극대화시키는 등 몇가지 변곡점을 보여주며 연주력을 이끌어냈다. 김송현의 연주는 1악장 후반부터 진가를 드러냈다. 숨이 막힐듯, 전하고자 하는 진심을 밀어붙이는 표현이었고 2악장에서 권혜진 플루트 수석과 단선율로 이어받는 조화도 돋보였다. 맹렬한 질주와 드라마틱한 전개를 펼친 마지막 3악장에서는 마치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차이콥스키에 다가가려는 피아니스트의 몰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앙코르로는 차이콥스키 ‘사계’ 모음곡 중 ‘10월 가을의 노래’를 선보였다. 5월과 대조되는 시린 감정과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마지막 터치가 끝난 뒤 15초 후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음악의 여운을 충분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송유진 지휘자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은 마지막으로 향할수록 굉장한 집중이 필요한 곡이다. 다행히 곡의 감정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 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악보 대여 방식으로 연습했기 때문에 쉽게 보여드릴 수 없는 곡이기도 하다. 더욱 다채로운 음악을 들려드리는 기회들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비르투오소의 출현’ 현장 호평 이어져
음악인과 관객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강원대 리코더 전공 학생들과 함께 온 조진희 리코디스트는, “박규희 기타리스트는 명성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줬고, 김송현 피아니스트는 음악이 진행될수록 연주가 좋아졌다. 기술적 면에서 굉장히 뛰어났다”고 했다. 송경애 춘천청춘합창단 지휘도 “김송현의 연주는 사랑스러울 정도였다. 중간과 아랫소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좋았다”고 말했다.
숭실사이버대에 출강하고 있는 김승열 음악평론가는 “로드리고가 유학했던 파리에서도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들을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며 ‘박규희의 연주는 나르시스 에페스 등 20세기 이후 끊어졌던 비르투오소(기교파 명인)의 재림”이라고 평했다. 이어 “같은 곡을 2018년 하프 버전으로 편곡한 라비니아 마니어와 춘천시향의 연주로 들었었는데, 당시보다 훨씬 감동적이었다. 일본의 기타리스트 무라지 카오리나 가즈히토 야마시타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클래식 음반 기획사인 낙소스에서 앨범을 냈던 것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 관람한 이상명(봉의고 1년) 학생은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연주가 멋있었다”며 “피아노를 계속 배우고 싶게 하는 원동력과 동기가 되는 무대였다”고 했다. 이날 각계 기관단체장 외에도 이상수 도음악협회장, 강우성 강원대 음악학과장(피아니스트)과 김세일(테너)·심선민(퍼커셔니스트)·안성희(작곡가) 교수, 허순구 지휘자, 윤혜정 도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문화예술인과 음악애호가들이 대거 참석, 한국 클래식을 이끌 젊은 연주가들의 열정과 춘천시향의 연주력을 함께 감상했다.
한편 춘천 출신 민광기 대표가 이끄는 국내 최고 빅데이터 솔루션 전문기업 이씨마이너(ECMiner)는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지역 문화예술 발전과 소외계층 지원 등을 위해 음악제 티켓을 후원, 지역 복지기관 등에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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