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제사 주재자

박미현 2023. 5.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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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이 태어나 살았고 아들과 딸을 낳은 장소인 오죽헌은 1970년대 관광지로 탈바꿈하기 이전까지 안동권씨가 주인이었다.

본래는 최응현의 딸 강릉최씨 소유였다.

딸만 있는 가정에서는 으레 양자를 들여 제사를 받들고 대를 잇는 것이 전통 고유풍속으로 여기기 쉬우나 그렇지 않음을 알려주는 대표 사례가 바로 신사임당 가계이다.

재산을 물려받은 만큼 제사에 대한 의무가 있어서 딸 아들 가리지 않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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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이 태어나 살았고 아들과 딸을 낳은 장소인 오죽헌은 1970년대 관광지로 탈바꿈하기 이전까지 안동권씨가 주인이었다. 본래는 최응현의 딸 강릉최씨 소유였다. 최씨는 자녀를 외동딸만 두었는데, 바로 사임당의 어머니 용인이씨(1480~1569)였다. 이씨는 결혼하면서 서울로 갔으나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다시 오죽헌 본가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모셨다. 이씨는 딸 다섯을 낳았다. 오죽헌은 넷째에게 조상 묘소를 돌보는 조건으로 상속했다. 둘째 사임당에게는 제사 주재를 조건으로 서울 수진방의 집과 논밭 따위를 물려줬다. 이씨는 딸들에게 골고루 재산을 물려준다는 긴 두루마리 문서를 만들어 서명했다. 1548년 작성된 ‘용인이씨분재기’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돼 보존 중이며 지금도 실물을 볼 수 있다.

딸만 있는 가정에서는 으레 양자를 들여 제사를 받들고 대를 잇는 것이 전통 고유풍속으로 여기기 쉬우나 그렇지 않음을 알려주는 대표 사례가 바로 신사임당 가계이다. 상속 재산을 나눌 때 아들과 딸의 차이가 없고, 결혼 여부에도 관계없이 균등하게 집행한 경우는 더 찾을 수 있다. 재산을 물려받은 만큼 제사에 대한 의무가 있어서 딸 아들 가리지 않고 지냈다. 조선시대 남성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 중에 장인 장모 혹은 외가, 처가 제사를 지낸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 후 경제가 피폐하고 차별을 강화해 사회기강을 잡았던 지배층 속셈이 퍼지기 전까지는 대개 이런 풍속이었다.

5월 11일 대법원에서 제사 주재 우선권이 남성에게 있지 않다고 판결해 시선을 모았다. 재산과 관련된 제사 주재권은 유족 간 합의가 없으면 나이순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재연 대법관) 판단이 나왔다. 2008년 장남 내지 장손자가 우선하고, 아들이 없는 경우 장녀가 된다는 판결이 나온 지 15년 만에 깨진 것이다. 헌법 11조와 36조 정신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11조, 개인 존엄과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36조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 의미가 퇴색했고, 제사용 재산의 승계도 남녀 차별을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반영한 것이다. 현행법상 제사 주재권은 상속 재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민법상 고인의 유해와 분묘 등 제사용 재산 소유권은 ‘제사 주재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법적 차별을 없앤 진일보한 판결이다. 차별을 조장해 인권을 억압하는 법제도의 개선을 확대하는 자극제가 돼야 한다.

박미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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