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병무청장 “예술·체육요원 큰 틀서 재검토 필요… 병사 복무기간 단축 더는 안 돼”[인터뷰]
'인구절벽'의 시대다. 사상 최악의 출산율은 병역자원 확보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주무부처인 이기식 병무청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 청장은 10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병역만큼은 공정해야 한다"며 "공정이 훼손되면 국민들이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는 분야"라고 입을 열었다.
입대할 남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군복무를 해야 한다. '무인화·과학화'로 충당하는 건 아직 역부족이다. 이 청장은 "예술·체육요원 보충역 제도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시 살피겠다"며 "(육군 병사 기준 18개월인) 복무기간 단축은 더이상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병역 이행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결했지만, '군 가산점제'의 취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이 청장은 "정신과 질환을 가진 병역 자원들은 과감히 5급(면제)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현역으로 입대하거나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할 경우 본인과 지휘관, 동료들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 청장은 서울지방병무청에서 당초 예정시간을 훌쩍 넘긴 2시간가량 우리 사회의 병역제도 전반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예술체육요원은 보상 차원… 정리할 필요 있다”
예술·체육요원은 올림픽 메달을 따거나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린 경우 군복무를 면제받는 경우다. 훈련소에서 3주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2년 10개월간 기존 분야에 종사하면 군복무가 끝난다. 사실상 군 면제나 다름없다. 축구선수 손흥민, 피아니스트 임윤찬 등이 대상이다. 반면 BTS 멤버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월드컵 시즌마다 '16강 진출은 군 면제인가요'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이 청장은 “예술·체육요원은 보상 차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병역 특례 제도와 비교했다. 이 청장은 “산업기능요원이나 전문연구요원은 군 복무보다는 국가산업 발전을 통한 국익 기여 측면이 있고 공중보건의사는 의료취약 지역에서 기여할 수 있다”면서 “예술·체육요원의 기량 유지도 중요하지만, 메달을 따고 경쟁에서 1, 2위를 했다는 이유로 보상하는 것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을 검토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청장은 “선수들의 기량도 떨어지지 않고 공정도 유지해가면서 예술·체육 특기자들에 대한 보충역 문제는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발이 굉장히 심하겠죠”라면서도 현재 고심 중인 방안 하나를 제시했다. 예술·체육요원의 입대 연령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 분야에서 충분히 기량을 뽐내고 나서, 나중에 병역의무를 다하면 된다는 의미다.
모병제ㆍ여성징병제 힘들어.. “복무기간 단축 더이상 안 돼”
그럼에도 병역자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에 '모병제·여성징병제·복무기간 연장' 등 다양한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청장은 우선 모병제와 여성징병제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그는 “병역제도 변경 또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는 안보 환경과 경제적 여건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이 있다”며 “여론 수렴과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 청장은 “모병제는 입대 인원과 전역 인원을 예측할 수 없다”며 “안정적인 병력 운영이 될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국제정세에 따라 모병제를 시행하던 많은 국가들이 다시 징병제로 환원하는 점을 되짚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모병제가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 청장은 여성 징병제에 대해 “굉장히 큰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자칫 잘못하면 젠더 갈등으로 우리 사회에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복무기간 연장에 대해 이 청장은 “복무기간 단축은 더 이상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금 누가 (복무기간 연장을) 할 수 있겠나”라며 “복무기간 연장은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모병제와 여성징병제, 복무기간 연장 등 세 가지 대안 모두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청장은 “충분한 검토 없이 섣부르게 제도를 변경할 경우 병력 충원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생존에도 직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군복무는 디딤돌… 병역이행자 인센티브 검토해야”
이 청장은 군 복무가 인생의 디딤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병역 면탈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경력에 대한 단절”이라며 “군입대가 경력 단절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청장의 바람과 달리 병무청이 뇌전증을 핑계로 지난 3월 검찰과 기소한 군 입대 회피자는 130명에 달한다. 병무청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특정 질병 관련 병역 면제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는 경보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이 청장은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당부했다. 그는 “영국 왕실 일원은 군에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있는 나라는 결국은 강한 나라가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청장은 궁극적으로 “군 복무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역자원 확보가 갈수록 어려운 만큼, 어떤 식으로는 군 복무에 대해 예우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청장은 “우리 국민 모두는 병역을 이행한 분들에게 존경과 예우를 다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단언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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