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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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하천이 2000년 1월 발표한 수필집의 '도발적인' 타이틀이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제사가 싫다'(이프 펴냄). 첫 장에서 '조상은 상전이 아니다, 사회가 바로 상전이다'고 한 이 수필집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사를 올리는 집은 조상에 대한 숭배의 목적이 아닌 친척 형제와의 관계유지와 전통적인 관례와 풍습으로 하는 것이다"는 시각이 더 많은 세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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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하천이 2000년 1월 발표한 수필집의 ‘도발적인’ 타이틀이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제사가 싫다’(이프 펴냄). 첫 장에서 ‘조상은 상전이 아니다, 사회가 바로 상전이다’고 한 이 수필집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용과 형식이 완전히 새로운 제사, 여성으로서 몸과 영혼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혁명적인 제사 양식을 찾기 전에는 절대 현재의 제사를 받아들일 수도, 지낼 수도 없다고 용기 있게 외친다.” 겉으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나도 제사가 싫다”고 소리 죽여 외치던 사람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전은 제사를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으로 규정한다. 고대 종교 신전 제의와 가톨릭 미사 등 폭 넓게 사용되는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조상 제사의 의미로 쓰인다. 특히 제사상 차림 형식을 놓고 논란이 많았다. 성리학 예법이 평민에게까지 퍼지고 신분 질서가 무너진 조선 말엽부터 일반 가정에서도 제사를 모시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집안마다 제사상 차림이 존재했을 법하다.
아들딸 관계없이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하던 고려나 조선 전기까지 제사 주체에 대한 남녀차별이 없었다. 출가외인이라는 개념도 없어 모두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셨고, 기혼 남성이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시집 간 누나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 유가에서 규정한 제사 형태가 일반화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보통 집안의 장남이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굳어졌다. 제삿날에는 상 차림 등을 놓고 크고작은 다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대법원은 최근 “제사 주재자는 공동상속인 간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로 우선한다”고 판결했다. 2008년 아들에게 제사 우선권을 주었던 대법원의 종전 판례가 15년 만에 깨진 것이다.
“제사를 올리는 집은 조상에 대한 숭배의 목적이 아닌 친척 형제와의 관계유지와 전통적인 관례와 풍습으로 하는 것이다”는 시각이 더 많은 세태다. 제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시대 흐름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핵가족이 대세를 이루고, 더 나아가 홀로 사는 세대도 늘면서 제사 모시는 집이 드물어질 수 있겠다. 바뀐 세상, 제사 주재자를 또다시 규정한 대법원의 ‘친절한 판결’이 낯설기도 하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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