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학교에 안 가니 행복해졌다

홍진수 기자 2023. 5.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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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여고괴담>이란 영화가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학교를 떠나지 않은 ‘여고생 귀신’을 소재로 교사의 폭력, 학생 차별, 학교의 부조리 등을 다뤘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였는데도 청소년 관객이 꽤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원단체총연합회가 ‘영화가 교사의 폭력을 과장하고 교육 현장의 어두운 면만 부각해 교사들의 명예훼손은 물론 교육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고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교총의 주장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았다. 실제 학교가 영화 속 공포를 부르는 공간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2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 학교는 많이 달라졌다. 시설이 좋아진 것은 당연하고, <여고괴담> 속 등장인물 같은 폭력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되레 교사가 학생의 교권 침해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사회 전체가 투명해지면서 학교 안 부조리도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제 학교는 더 학생에게 공포의 공간이 아닐까.

공포까지는 아니어도, 학교가 여전히 학생에게 ‘스트레스와 우울의 온상’임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달 14일 경향신문 남지원 기자가 전한 기사 하나는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제목은 ‘코로나19로 학교 문 닫자, 아이들은 잠시 행복해졌다’. 막연한 짐작이나 추정으로 쓴 제목이 아니다. 정부가 제공한 자료를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을 담았다.

이 기사는 당일 교육부와 질병관리청이 함께 발표한 자료 ‘2022년 청소년 건강행태 조사 결과’ 중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을 부각해 썼다. 지난해 전국 중·고교 학생 5만1984명의 건강 상태 등을 조사해 통계를 낸 것이 핵심인데, 우울감 등 부정적인 정신건강 지표가 2년 전인 2020년과 비교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학생의 부정적인 정신건강 지표는 2020년 직전 연도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가 2022년 반등했다. 구체적으로 최근 1년 사이 일상생활을 2주 내내 중단할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을 느낀 ‘우울감 경험률’은 2019년 28.2%에서 2020년 25.2%로 줄었다가 2021년 26.8%, 지난해 28.7%로 다시 늘었다. 평상시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끼는 ‘스트레스 인지율’도 2019년 39.9%에서 2020년 34.2%를 거쳐 2021년 28.8%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41.3%로 대폭 상승했다. 지난해 우울감 경험률과 스트레스 인지율은 모두 2013년 이후 가장 높았다.

학생의 자리에서 바라본 2020년과 2022년은 무엇이 가장 달랐을까. 바로 코로나19의 유행 정도, 더 정확히는 학교에 직접 가냐, 안 가냐였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한 2020년 대부분 학교는 오랫동안 문을 닫았다. 학교는 텅 비었고 수업은 집에서 하는 비대면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몇 차례 재유행을 거쳐 2022년 코로나19는 잦아들기 시작했다. 학교는 다시 문을 열었고 등교와 대면 수업도 재개됐다.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지표는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이례적으로’ 개선됐다가 다시 나빠졌다. ‘일상회복’이 시작되자 우울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청소년은 다시 늘었고, 지난해에는 9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청소년들이 잠시 학업 부담과 교우관계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며 개선됐던 정신건강 지표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학교가 진짜 ‘범인’일까. 정부의 또 다른 조사 결과를 보자. 보건복지부가 ‘중·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벌인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초부터 우울 위험군이 지속해서 증가하다가 2021년 3월에 최대치를 찍고 같은 해 하반기부터 감소했다. 청소년들만 유독 코로나19 시기에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줄었다는 방증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학교란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경쟁과 스트레스’가 있어야 학생의 발전을 끌어낼 수 있다는 논리가 뒤따를 것이다. 온 사회가 경쟁을 요구하고 있는데 학교와 학생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을 전면 부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사고나 질환으로 죽는 청소년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청소년이 많은 한국사회에서 ‘코로나19로 학교 문 닫자, 아이들은 잠시 행복해졌다’는 간단하고 명료한 사실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코로나19가 무심코 한국사회에 던진 숙제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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