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외교 3인방 일제히 유럽으로… EU에 구애 작전
중국 외교를 이끌고 있는 최고위층 3인방인 한정 국가부주석,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친강 외교부장이 일제히 유럽을 찾았다. 중국 외교의 ‘톱3′가 동시에 자국을 비우고 특정 지역으로 날아가는 것 자체가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 외교를 대리하는 한정은 지난 6일 영국 찰스 3세 대관식에 참석했고, 지난 7~12일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한정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마르크 뤼터 총리와 만나 공급망 안정을 거론하며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에 참여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외교부장을 거쳐 외교 사령탑에 오른 왕이는 10∼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회동했다. 11일에는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과 만났다. 주미대사를 지낸 뒤 외교부장이 된 친강은 8~12일 독일·프랑스·노르웨이를 순방했다. 12일 노르웨이 외무장관과의 공동회견에서는 중국과 유럽 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신냉전에 반대하는 진보적 역사관’을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핵심 실세들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전 평화 협상 중재 특사 역할을 맡게 된 리후이 유라시아사무 특별대표 또한 15일부터 우크라이나·폴란드·프랑스·독일·러시아 등 5국을 방문한다. 다음 달 20일에는 리창 중국 총리가 독일을 방문해 올라프 숄츠 총리와 대만 문제와 기후 협력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중국 외교의 ‘톱3′가 일제히 유럽 출장길에 오른 이유는 미국의 대중 압박 속에 유럽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을 짜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상황에서 중국은 경제적 이득을 약속하며 유럽 국가를 포섭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초청해 수도 베이징과 지방 도시에서 두 차례나 만남을 가진 끝에 논란이 됐던 ‘대중국 디커플링 반대’ 발언을 끌어냈다. 마크롱은 중국 방문 일정 중 “EU(유럽연합)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나 중국의 입장을 따라선 안 된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중국을 상대로 함께 대응하던 서방 진영에 찬물을 끼얹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외교 실세들의 동시다발적인 유럽 방문과 관련해 “이러한 소통은 유럽이 외부의 소음을 극복하고, 더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중국에 대한 인식을 갖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내부적 인식과 달리 오히려 유럽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 대관식에 한정이 참석하자 영국에서는 “홍콩 국가보안법 도입을 주도한 책임자를 보낸 것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영국에 대한 의도적 도발”이란 반발이 나왔다.
친강과 9일 만난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립은 침략자(러시아)의 편을 드는 것”이라면서 중국을 공개 압박했다. EU 외교부 격인 대외관계청(EEAS)은 12∼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EU 외교장관 이사회에서 대만 유사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포함한 대(對)중국 전략문서 초안을 회원국에 배포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14일 보도했다. EU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도 나왔다.
이 때문에 서유럽 국가들의 근본적인 중국관이 변하기 전에 본격적인 관계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U와 중국은 7년 협상 끝에 경제 협력 협정인 ‘포괄적 투자협정’에 합의했지만, 2021년 5월 유럽의회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 등을 문제 삼아 비준 절차를 중단시키며 제동이 걸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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