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웃고 있는 빵
빵들은 웃고 있다고 나는 본다
빵들은 웃고 울면서 부풀어지는데
결국 마지막에는 웃게 되어 있다
나는 웃고 있지 않은 빵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걸 먹겠다
침 바른 빵을 나는 먹는다
내가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데
네게도 한입 내밀고
중앙으로 갈라지는 좋은 냄새
거기서 웃음이 났다
허주영(1990~)
빵 반죽에는 밀가루, 설탕, 소금, 이스트, 버터, 우유 등이 들어간다. 반죽이 끝나면 발효의 시간이 필요하다. 화자인 ‘나’는 발효해 부풀어 오르는 반죽을 보고는 웃고 울다 “마지막에는 웃게 되어 있다”고 한다. 빵들의 웃음과 울음에 주목한 화자는 ‘웃는 빵’을 먹겠다는 강한 의도를 드러낸다. 맛은 부차적이고, 한 끼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빵에 침을 바르는 행위는 내 것이라는, 소유의 의미가 들어 있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만큼 허겁지겁 빵을 먹는다.
허기를 면한 후에야 곁에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빵들이 웃고 있는 건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굶주림 앞에선 그 무엇도 소용없다. “중앙으로 갈라지는 좋은 냄새”는 너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갈라지지만 좋은 냄새가 나니 긍정적이다. 맛있는 빵을 먹으려면 반죽이 발효되는 시간과 오븐에서 빵이 익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적당한 재료의 배합과 정성, 온도 조절도 중요하다. 조급하면 일을 그르친다. 사람과의 관계도 빵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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