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가 예술품이 될 수 있나[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3. 5.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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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굿즈와 예술품의 경계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당신도 어쩌면 밥보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밥을 먹고 입가심으로 디저트를 먹는 게 아니라, 디저트를 먹기 위해 밥을 먹는 사람인지 모른다. 잡지를 사다 보니 부록을 갖게 되는 게 아니라, 부록이 탐나서 잡지를 사는 사람인지 모른다. 읽기 위해 책을 사는 게 아니라, 딸려오는 굿즈가 좋아서 책을 사는 사람인지 모른다.

당신만 굿즈 좋아하나. 나도 굿즈 좋아한다. 굿즈를 얻기 위해 책 한 권 더 사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작년에 책을 출간했을 때, 출판사에서 굿즈 안 만든다고 해서 깊이 낙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술관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기념품 상점을 안 들르고 미술관을 나오는 일은 블록버스터의 쿠키 영상을 안 보고 극장을 나오는 일과 같다. 뮤지엄 숍에 들르면, 해당 전시에서 꼭 봐야 할 작품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역대 전시에서 만든 굿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굿즈란 무엇인가. 굿즈는 상품이다. 팔기 위해 만든 제품이므로 굿즈의 핵심은 상품성에 있다. 예술품도 팔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술품도 상품인가, 그렇다. 예술품도 사고팔리니 그것도 상품이다. 그러나 모든 상품이 다 예술품은 아니다. 잘 팔린다고 곧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을 예술이게끔 만드는 것은 상품성이 아니라 예술성이다. 예술품은 굿즈에는 없는 예술성이라는 허영 혹은 자존심이 있다. 그 고매한 허영 때문에 예술품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굿즈는 자세를 한껏 낮추고 시장에서 서슴없이 팔려나간다.

자존심으로 버티는 예술품은 그 어디에도 없는 ‘오리지널’을 지향하지만, 상품성을 우선시하는 굿즈는 다량 생산을 지향한다. 그래서 굿즈는 마치 ‘짝퉁’처럼 많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굿즈와 ‘짝퉁’은 다르다. 굿즈는 진품을 가장하지 않기에, ‘오리지널’에 대한 열등감이 없다. 굿즈는 ‘오리지널’에 기대어 서슴없이 자신들 드러낸다. ‘짝퉁’이 카피라는 열등감 때문에 음지를 맴돌 때, 굿즈는 아무 마음의 그늘 없이 세상에 팔려나갈 태세를 갖춘다. 그래서 내가 굿즈를 좋아한다. 이 세상에 허영과 열등감이 동시에 없는 존재는 드물고, 굿즈는 바로 그 드문 존재 중 하나다.

새침한 표정의 목제 미피 인형. 예술품 못지않은 굿즈다(왼쪽 사진). “사랑 같은 건 난 몰라(loveless)!”라고 외치는 단호한 자세의 강아지 굿즈. 김영민 교수 제공
굿즈를 좋아한답시고 이것저것 사들이기 시작하면, 집 안은 도대체 어디다 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물건들로 가득 차게 된다. 굿즈의 특성은 바로 그 애매함에 있다. 출판사에서 책과 함께 주는 굿즈를 제작할 때, 제작비 상한선이 법률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굿즈에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굿즈의 질이 아쉬운 경우가 많다. 미술관의 굿즈는 예산상 한계가 없어서, 책에 딸려 오는 굿즈보다 훨씬 더 양질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양질인 만큼 비싸다. 그래서 과연 이 비싼 돈을 주고 예술품도 아닌 굿즈를 사야 하나 하고 망설이게 된다.

망설이는 마음을 안고 전시장을 하염없이 헤매다 보면, 상당한 액수를 지불하고서라도 기꺼이 구입하고 싶은 멋진 굿즈를 만날 때가 있다. 나에게 그런 굿즈는 충만한 예술적 체험을 전해준다. 내가 사랑하는 목제 미피 인형은 그 새침한 표정이 얼마나 일품인지! 나무로 된 그 피부는 얼마나 감촉이 좋은지! 나는 아주 친한 사람에게만 그 피부를 어루만지게 허락한다.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 인형은 또 얼마나 기백이 대단한지! “사랑 같은 건 난 몰라!”(loveless)라고 외치는 단호한 자세는 강아지가 얼마나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인지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단연코 이 두 굿즈는 예술품의 반열에 오른 굿즈 이상의 굿즈다.

굿즈를 사랑하는 법은 무엇인가? 사고 싶은 대로 사들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꼭 마음에 드는 것을 잘 골라 사서 그에 어울리는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양지바르고 정갈한 탁자 위는 어떤가. 그게 아니라면 해당 굿즈에 적합한 케이스를 마련해주는 것은 어떤가. 훌륭한 그림에는 그에 어울리는 액자가 필요하듯이, 멋진 굿즈에는 그에 걸맞은 케이스가 필요하다. 맛있는 스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잘 숙성된 생선살만 필요한 게 아니다. 스시 맛을 완성하는 것은 잘 조미된 밥이다. 맛있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툼한 패티만 필요한 게 아니다. 햄버거 맛을 완성하는 것은 잘 구워진 빵이다. 멋진 굿즈를 완성하는 것은, 잘 만들어진 진열장이다.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무제’(2018년). 미켈란젤로의 걸작 ‘최후의 심판’으로 유명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을 약 5분의 1로 줄인 복제품(?)을 만들었다. 이것은 시스티나 성당의 카피인가, 짝퉁인가, 아니면 별도의 예술품인가. 김경태 씨 제공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미술계의 악동’으로 알려진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무제’를 감상했다. 카텔란은 미켈란젤로의 걸작 ‘최후의 심판’으로 유명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을 약 5분의 1일로 줄여 단아하고 이동 가능한 복제품(?)을 3개나 만들었다. 이것은 시스티나 성당의 카피인가, 짝퉁인가, 아니면 별도의 예술품인가. 나는 이것이 시스티나 성당에 기반한 일종의 굿즈라고 생각한다.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악동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카텔란은 굿즈이면서 예술품이 된, 혹은 굿즈와 예술품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품을 만든 것이다.

카텔란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을 다니며 이 소규모 시스티나 성당(?)을 전시한다. 그렇게 전시하는 순간, 예술품과 굿즈의 경계는 무너지고, 그것이 전시된 미술관들은 잠시나마 굿즈를 위한 케이스로 변모한다. 그 굿즈 안에 들어가 축소된 ‘최후의 심판’을 구경하는 관객들은 성스러운 채플을 대리 감상하는 것일까, 아니면 카텔란이 자본주의에 봉헌하는 제사의 봉헌물이 되는 것일까.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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