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프랑스 여성장관의 가슴에 새긴 49.3
우리에겐 관련 법안 아예 없어
얼마 전 프랑스에서 마를렌 시아파(Schiappa) 사회경제 담당 국무장관이 성인용 잡지 ‘플레이보이’와 인터뷰를 했다. 꽤 긴 12쪽 분량이다. 올해 마흔 살 시아파 장관은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을 얘기했다. 시아파 장관은 표지 모델로도 나왔다. 위아래 온몸을 드러낸 사진이었다.
일부에서 “좀 심하다”고 하자 장관은 “여성이 자기 몸 지킬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여성은 자유롭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화제가 됐던 것은 사진에서 보듯 장관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49.3′이란 커다란 숫자였다. 이는 프랑스 헌법 49조 3항을 의미하는 숫자인데, 장관으로서 국가적 핵심 현안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프랑스 헌법은 제34조에서 51조까지 18개 조항을 통해 의회와 정부의 상호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많은 부분은 의회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책임’을 기술하고 있다. 동시에 ‘합리적 의회주의’와 ‘정부의 안정적 국정 운영’도 강조한다. ‘합리적 의회주의’(le Parlementarisme rationalisé)란 ‘의회 중심의 국가라고 하더라도 정부의 국정 운영이 지나치게 불안정(l’instabilité)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헌법이 보장하는 여러 제도’를 뜻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중대 개혁 법안을 내놓았는데, 특정 다수당이 이를 반대할 경우 정부 수반인 총리는 의회 표결 없이 법안을 즉각 통과시킬 수 있도록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구체적 절차를 규정한 조항이 프랑스 헌법 49조 3항이다.
이렇게 돼 있다. ‘총리는 사회보장 재정(財政) 법안 등의 의회 표결에 앞서 정부에 대한 신임-불신임 여부를 의회에 물을 수 있으며, 의회가 24시간 이내에 정부 불신임안을 발의하지 않으면 해당 법안은 채택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 법안이 통과된 것으로 하든지, 아니면 정부를 불신임하든지 하라는 것이다.
의회를 압박하는 만큼 정부도 실각 위험을 떠안는다. 연금 수령 나이를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하는 개혁 법안에 마크롱 정부는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 만약 의회가 불신임안을 내고, 이것이 통과되면 정부 법안이 무효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각과 정권까지 붕괴되는 것이다. 이것이 ‘정부의 정치적 책임’이다.
‘합리적 의회주의’는 헌법이 의회 다수당을 적극 우대하는 만큼 의회의 방해 때문에 정부가 만성적인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 또한 막아야 한다는 데 뜻을 두고 있다. 바꿔 말하면, 국민이 뽑은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의 연금 제도가 파산하지 않으려면 연금개혁법이 필수적이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말한 취지와 관련 입법을 관철할 수 있도록 헌법이 보장하는 것이다.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지금까지 65년 동안 ‘제49조 3항’은 모두 99번 발동됐다. 마크롱 정부는 그중 11번 발동했다. 이와 별도로 정부 불신임안은 같은 기간 59번 다뤄졌는데, 그중 1962년 단 한 번만 통과됐다. ‘합리적 의회주의’는 프랑스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이런 헌법 조항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국회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국회는 대통령과 각료를 탄핵 소추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연금-교육 같은 3대 개혁을 추진하는 윤 정부는 야당이 찬성하지 않는 한 독자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방법이 없다. 바꿔 말해 윤 대통령은 국회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대통령의 의회 해산권’을 되살리자는 제안도 가능성은 제로다. ‘돈 봉투’와 ‘코인 벼락’이 의사당 지붕을 내려쳐도 상황은 꿈쩍도 안 할 것이다. 협치나 정계개편도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협치로 정권 재창출했다는 전례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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