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희의 아이러니] 일생의 공부

기자 2023. 5.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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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수반되는 지혜는
지지부진하다 계단형으로 발전
그것은 나의 생각, 나의 욕망과
결별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자
눈 번쩍 뜨이는 환희의 과정이다

모 교수님의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얼마 전에 읽었다. 도움이 될 내용이 많았지만, 나보다는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었다. 지난주에는 어느 작가가 나이 들어서도 열심히 독서하자는 칼럼을 모 매체에 실었다. 충분히 쓸 수 있는 글인데도, 공감과 반대로 나뉘어 SNS가 소란스러웠다. 덕분에 공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업무상 전문분야를 천착하는 것 말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조광희 변호사

공부의 대명사는 독서인데, 책은 버림받고 있다. 나만 해도 제대로 읽는 책의 수가 현저히 줄었다. 읽겠다고 제목을 메모하거나 손에 넣은 책은 많지만, 정독한 책은 드물다. 대개 발췌독을 하게 된다. 우선 영상매체, SNS를 비롯한 인터넷 등 책과 경쟁하는 매체가 너무 많다. 호흡도 짧아졌다. 현대의 가공할 속도는 책에 침잠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공부란 무엇일까. 남들에게 잘 보이려 공부한다는 분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면 된다. 학식 높은 이의 말을 경청하며 궁금한 것을 겸손하게 묻기만 해도, 상위 10%에 속하는 호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도 잘 보이려 공부하는 데에는 무슨 사연이 있지 않나 싶다.

‘공부는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높여준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지만,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한 요소에 불과하다. 공부는 지식으로는 쉽게 이어지지만 지혜로는 드물게 이어지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지혜다. 그런데 지혜는 교육의 정도나 독서량과 자주 무관하다. 정규교육을 거의 못 받았지만 현명한 부모나 조부모에 대해 우리 세대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일생을 걸고 공부하는 이유는 학문을 닦는 학자가 아니라면 결국 인생을 잘 살아내기 위한 것이다. 인생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중요한 인생의 질문에 제 나름의 답을 찾는 것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살 만한가? (사업가로서 계속 자본을 축적하는 게 자신의 일이 아닌 이상)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재산은 얼마이며, 그것을 벌기 위해 나는 얼마나 일을 해야 하나? 다다익선이 아니냐고요? 대가가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돈을 버는 데에는 위험과 대가가 수반되므로 어딘가에서는 멈추어야 한다. 세상의 규범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나? 죽음을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 누구와 친교할 것인가. 결혼을 해야 하나? 종교를 가질 것인가?

이런 질문들 하나하나가 시급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삶의 방향과 속도와 무늬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때 지혜로운 판단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그것을 위해 공부는 피할 수 없다.

지혜로운 판단을 위해 단련할 것들도 많다. 예를 들어, 머릿속에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의견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숙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무엇을 믿을 것인가’는 판단력의 정수다. 믿고자 하거나, 믿지 말고자 하면, 어떤 증거든 넘치는 상황에서 무엇을 믿어야 하나?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것인가. 친구에 대한 소문을 믿을 것인가. 검찰청 계좌로 돈을 보내라는 전화를 믿을 것인가. 코인이 오를 거라는 말을 믿을 것인가. 대선 후보의 공약을 믿을 것인가. 연인의 맹세를 믿을 것인가. 무언가를 믿거나 믿지 않기 위해서는 각별히 높은 수준의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을 믿을지에 대한 지혜만큼 중요한 것이, 언어의 혼란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서로 다투는 많은 이유는 사용하는 단어의 정의에 합의하지 않아서다. 불분명한 언어를 두고 서로 설왕설래할 필요 없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의 마음을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 자기라는 존재를 탐구하지 않고는 지혜에 이를 수 없다. 자신의 고유한 역사, 성향, 감정, 욕망, 취향, 감각을 깊이 탐구하고 성찰하는 것은 지혜의 필수 요소다.

공부가 이렇게 어려운데, 다행스럽게도 공부는 독서에 한정되지 않는다. 영화, 드라마, 친구와 떠는 수다, 산책, 심지어 술도 도움이 된다.

공부가 능사는 아니고 독서가 전부도 아니다. 생동하는 이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것을 위해 책이든 친구든 현자든 유튜브든 명상이든 알코올이든 무언가를 통해서 깨달으면 된다. 꾸준히 애쓰다 보면, 몇년에 한 번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결정적 순간들이 다가온다. 공부에 수반되는 지혜는 지지부진하다가 느닷없이 계단형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익숙한 나의 생각, 나의 욕망과 결별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자, 눈이 번쩍 뜨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의 과정이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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