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전세사기 대책, ‘합의’는 이미 있다
지난 5월8일부터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국회 앞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두 달 사이 세 명의 피해자가 목숨을 잃고 다양한 보증금 미반환 사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6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피해자’와 같은 억지 조항을 넣거나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보호 대책이 제외돼 있어 천막 농성에 나선 것이다. 피해자들은 정부의 법안은 ‘피해자 감별법’, ‘피해자 갈라치기법’일 뿐이라며 제대로 된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다.
진짜 피해자를 골라낼 수 있다는 정부의 말부터 잘못됐다.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뉘기는 하지만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피해자들의 상황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특별법의 조건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사각지대 없이 피해 상황을 충분히 포괄해야 하고 둘째, 피해자들이 자신의 상황과 조건에 따른 대책을 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보장해야 한다.
피해 유형이 다양한 만큼 특별법이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 주택이 경매 절차에 돌입했을 때 피해자가 해당 주택을 매수할 수 있도록 돕는 우선매수권, 피해자가 해당 주택을 구입할 여력이 없거나 원치 않을 때 주거지 상실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구입하는 정부 매입 후 공공임대주택 활용, 복잡한 경공매 절차를 국가가 대리하고 피해자가 피해 상황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는 보증금 채권 매입, 경매나 채권 매입으로도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금이 없는 피해자들을 위한 최우선 변제금 보장과 같은 것들이 동시에 선택지로 제시된다면 피해자들은 자신의 상황과 조건 아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저리대출과 같은 금융지원조차 부부합산 연소득 7000만원과 같은 제한선을 고집하고 있는데 반복되는 정부의 잘못된 대책이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한 것으로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
얼마 전 또 한 피해자의 부고가 있었다. 전세사기로 2억4000만원의 빚을 떠안게 된 그는 금리 인상의 타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2개월 뒤 전세 계약이 종료되는 상황에서 이자를 내기 위해 투잡, 스리잡을 뛰며 인근 피해자들을 모아 소송을 진행하고, 저리대출이 없는지 알아보다가 돌연 세상을 떠났다. 하루하루 성실했으나 피할 곳이 없었던 그의 삶이 이 정부가 시민들에게 강요하는 각자도생의 교리 그 자체가 아닌가.
원희룡 장관은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을 거부하지만 합의는 이미 있다. 누구나 집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이렇게 위험천만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합의의 원천이다. 피해자들이 보내는 신호에 정부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 외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날로 늘어날 것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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