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단신 고생했지만" 美서 5조 기업가치 인정받은 이 기업
다이어트 식단관리 앱으로 입소문…미국인 58%가 아는 브랜드로 성장
"의대 쏠림, 韓 시장 사정상 이해하지만 너무 안타까워"
"그동안 풀린 돈 많았다…기본체력 약한 회사 힘들 것"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뉴욕 맨해튼에 본사를 둔 헬스케어 기업 ‘눔’(Noom)은 한국인이 미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 중 기업가치가 가장 높은 회사다. 2021년 5월 시리즈F(상장 전 후기 투자) 펀딩을 통해 5억4000만달러(약 7300억원) 투자를 받으며 기업가치를 37억달러로 인정 받았다. 한국 돈으로 약 5조원이다.
눔은 식단을 비롯해 운동, 생활습관 정보를 모아 인공지능(AI)을 통해 건강관리 방법을 안내해주는 앱이다. 다이어트를 위한 식단관리 앱으로 특히 유명세를 탔다. 현재 미국인 58%가 인지하는 굴지의 헬스케어 브랜드로 올라섰다. 나스닥 상장(IPO)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평가다.
“2005년 1월 어느날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처음 내렸던 날을 잊을 수 없어요. 어렸을 때 시골인 전남 여수에서 자랐고요. 뉴욕에는 아예 연고가 없었어요. 한국의 사회 시스템에 구겨져 들어가는 느낌이 싫어 대학(홍익대 전자전기공학과)을 자퇴하고 창업하러 무작정 왔지요. 그렇게 2년 넘게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뉴욕 퀸즈의 주차장에서 1년 넘게 산 적도 있었으니까요.”
“한인 스타트업 진입장벽 낮아져”
지난 13일(현지시간) 본사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정세주(43) 눔 대표는 감회가 무척 새로워 보였다. 단돈 500만원 들고 혈혈단신 뉴욕에 건너 온 25세 청년이 이제는 어엿한 ‘롤모델’이 돼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눔은 뉴욕총영사관과 협업해 이날 ‘뉴욕의 한인 기업가들’ 모임을 주도했고, 100명 넘는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서부 실리콘밸리에 한인 네트워킹인 ‘82 스타트업’이 있는데, 이를 동부 뉴욕에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오는 8월 25일 ‘82 스타트업 서밋 뉴욕’ 행사 때는 550명 이상 모여 교류할 계획을 갖고 있다. 뉴욕총영사관의 권영희 상무관은 “뉴욕은 기술 기반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패션, 건축 등 창업 분야가 다양하다는 강점이 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유대인 등을 보면 현실적으로 인종 내 네트워킹이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는 “한인 스타트업 네크워킹의 시작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봤다”며 “제가 거기에 나서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인종을 비롯해) 진입장벽이 있어요. 또 한인 선후배가 딱히 없잖아요. 저는 고생했지만, 후배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미 자리 잡은 한인 스타트업들도 실제로 많아요. 매달 이런 모임이 생긴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는 ‘기회의 땅’ 뉴욕에 대한 고마움 역시 잊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차가운 도시 같지만, 선한 영향력이 가진 이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조금씩 인정받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눈물 나게 고마웠던 분들이 많다”며 “기업 브랜드 인지도가 20%를 넘기는 게 매우 어려운데 58% 이상 올라간 기회가 온 것은 (어려운 이들을 너그럽게 도와주는) 뉴욕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도전의 삶을 살아 온 그에게 최근 극도로 획일화하는 한국 교육과 직업 선호에 대해 물어봤다. 이른바 ‘의대 선호’ 현상이다. 그런데 자신 있게 말을 잇던 정 대표는 오히려 “그것은 말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의대 선호 현상은 너무 안타까워요. (당사자들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합니다. 한국 시장이 어려워지니 미래 안정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너무 도전적이었고 힘들었던 제 사례가 일반적인 게 아니어서 더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지금 젊은 세대는 영어를 잘하고요. K팝 등으로 한국에 관심이 커진 만큼 예전보다 창업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다양성을 찾을 수 있는 세계 시장까지 시야를 넓힌다면 선택지는 더 많아질 것으로 봅니다.”
그는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둔 예비 창업자들에게는 더 구체적인 조언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에 거점을 두고 영어로 변환해 미국에서 서비스하는 것은 온도 차가 너무 크다”며 “미국에서 직접 살아보면 여러 디테일한 문화 차이가 많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미국에 빨리 와 현지에 섞여서 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美 창업 꿈꾼다면 일단 현지 오라”
눔은 2006년 창업 이후 성공 가도를 달려왔지만, 그럼에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당장 시장의 관심은 눔의 IPO 시기다. 정 대표는 “우리 입장에서는 IPO가 가장 좋은 방향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경로가 될 것”이라면서도 “저도 예측을 하고 싶은데, 시장 상황을 잘 봐야 해서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최근 거시경제 상황이 매우 불안정해서 올해는 조심히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정도로 답변했다.
정 대표는 아울러 최근 미국 내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시장에 풀린 돈이 너무 많았다”며 “벤처캐피털(VC·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사업을 하는 사모펀드) 펀딩이 너무 많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업가치가 고평가된 곳들이 있다는 의미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비정상적인 성장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 ‘계산서’가 나오는 것 같다”며 “기본체력이 강하지 못한 회사들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질 것이고 실제 투자자들은 지금 매우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올해 말부터는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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