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 임박…부담 커질 듯
與, 재의요구권 공식 건의키로
16일 국무회의서 결정 전망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계 뜨거운 감자인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2호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결단을 앞두고 있다. 여당이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공식 건의한다고 밝히면서 윤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공약 파기' 논란이 불거지고 '불통' 프레임이 굳어질 수 있어 부담은 적지 않아 보인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의료계 파업이 예고돼 정부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윤 대통령은 오는 19일까지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재의요구권 행사 여부를 결단해야 한다. 지난달 말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 4일 정부로 이송됐다. 거부권 행사는 15일 이내 이뤄져야 하므로 19일까지가 결정 시한이다. 이에 따라 정례국무회의가 열리는 16일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점쳐진다. 임시국무회의를 열더라도 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하는 G7정상회의에 참석을 앞두고 있어 늦어도 18일에는 결단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두 번째 거부권 행사가 유력해 보인다. 여당과 정부도 윤 대통령에게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를 공식 건의한다고 밝히면서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4일 고위당정협의회 후 브리핑에서 "당정은 간호법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입법독주법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란 점에 공감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로 넘어온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 관련 규정을 떼어낸 것으로, 간호 직역 간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이들의 근무 환경·처우 개선에 관한 국가 책무 등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두고 당정은 간호를 별도로 법으로 규정할 경우 의료-간호 단일체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고, 간호조무사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두고 윤 대통령과 여당의 고심이 특히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담감이 커지자 여당이 의료계, 야당과 막판 협상에 집중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보건의료연대에 이어 11일 대한간호협회 단식현장을 찾는 등 관련 직역 단체를 잇달아 만나 설득하며 중재안 마련에 힘을 쏟아왔다.
민주당에는 중재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안에는 법안 명칭을 '간호사법'으로 바꾸고, '지역사회' '의료기관' 문구를 모두 삭제하는 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의사들은 간호법 제정안에서 간호사업무 영역을 '지역사회'까지 넓힌 것을 두고 간호사가 단독 개업할 수 있는 근거라고 반대해 왔다. 또 간호조무사 측 요구를 반영해 간호조무사 시험 요건에서 고졸 학력 제한 폐지안을 담았다. 이와 함께 간호법 제정안에 담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공 부문은 의료법에 존치하도록 해 관련 서비스를 요양보호사도 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끝내 중재안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을 건의하기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고위당정협의회 모두발언에서 "간호법 통과 이후 보건복지의료연대, 간호협회 등 당사자들을 만나서 합의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했지만 결국 지금 이시간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민주당에도 입법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의료협업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한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약 한 달 반만에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또 행사할 경우 양곡관리법 때보다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공약 파기'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공약했다며 거부권 행사는 어불성설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정책공약집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살펴보면 간호법 제정안 추진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11일 대한간호협회를 찾아 간접적으로 간호법 제정 노력에 힘쓰겠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신경림 간호협회장에게 간호협회 정책제안서를 넘겨받으면서 "잘 검토해서 간호협회의 숙원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저도,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언했다. 간호업계에서는 간호법 제정을 '숙원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또, 당시 간담회장에는 '간호법 제정으로 국민 건강 지키겠습니다'란 글귀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고, 윤 대통령은 이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당시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핵심 관계자들도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조속히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원희룡 당시 선대본부 정책본부장)", "간호법을 우리가 분리해서 제정해 줘야 하는 데 공감한다(임이자 선대본부 직능위원장)"며 힘을 실었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간호법 제정안' 공약은 없었다는 취지로 반박하고 있지만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실제 행사할 경우 후보 시절 당시 발언이 재조명되면서 '공약 파기'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불통'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다는 부담도 크다.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지난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 취임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야당과의 협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쓴소리에 정면 배치되는 행보로 비칠 수 있다. 양곡관리법 때와 달리 국민 여론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점도 부담이다. 지난 7일 알앤써치(CBS 노컷뉴스 의뢰, 3~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48명 대상, 표본오차 95%의 신뢰수준에 ±3.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해 '반대'가 51.8%, '찬성' 37.8%, 의견유보는 10.4%인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법 제정안'은 직역간 갈등이 첨예해 사회적 혼란이 커지면서 정부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 의협과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지난 3일에 이어 11일 2차 부분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17일 연대 총파업에 나선다고 경고한 상태다. 반면 간호계는 조속한 법 공포를 촉구하고 있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 등 대표단은 지난 9일부터 간호법 공포 촉구 단식 농성을 진행해왔고 12일 건강상태가 악화돼 응급실로 이송되기도 했다. 간호계 역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집단 투쟁에 나서겠다고 벼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의료계 갈등이 증폭될 수 있는 일촉즉발 상황인 셈이다.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간호사 처우 개선 방안 등을 제시하며 '간호계 달래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당정은 간호계가 요구하는 간호사 처우 개선은 간호법안 없이도 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지난달 25일 정부가 발표한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착실히 이행해나가기로 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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