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 '후원금 횡령' 누명 심경→'절친' 故현미에 마지막인사.."누나 안녕"('마이웨이')[Oh!쎈 종합]
[OSEN=김나연 기자] '뽀빠이' 이상용이 후원금 횡령 누명을 썼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14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는 올해 80세가 된 '뽀빠이' 이상용의 일상이 그려졌다.
이날 이상용은 고향 충청남도 서천을 찾았다. 초등학교 모교를 방문한 그는 "학교가 바다가 앞에 있다. 물이 짜다. 정수기 있었으면 좋곘다고 해서 정수기 두대를 아래 윗증에 놔줬다. 애들 짠물 놓지 말라고"라고 선행을 전했다. 이어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을 묻자 "아주 얌전하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몸이 약해서. 나서지 않고 아주 얌전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이상용은 생가가 있던 터를 찾아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엄마가 여기서 시집살이를 많이 했다"며 젊은시절 아버지의 잦은 외도를 홀로 견뎌야 했던 어머니의 아픔을 떠올렸다.
이상용은 "우리 아버지 원망 많이 했다. 가정적이지 않았다. 외향적이었다. 그래서 가족사진이 없다. 아버지와의 사랑이 없는거다. 내가 엄마 옆에 붙어있었다. 늘 아버지는 다방에 있었다. 데리러 가면 혼났다. 아버지가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머니가 저를 갖고 아버지 찾으러 백두산까지 갔다왔다. 그동안 내가 영향을 뭘 섭취했겠냐. 못먹었지. 어머니가 기진맥진해서 낳았는데 숨도 한참 있다 쉬고 죽겠다 싶었다. 온 동네가 '얘를 살리자' 해서 수십명의 마을 어머니들이 밭 매다가도 젖이 부르면 젖 먹이러 와서 살았다. 걸음마도 늦게 하고 정말로 산게 기적이었다. 어머니는 무조건 시부모님을 따르고 그땐 그럴수밖에 없었다. 죽는게 나을 정도로 심하게 시집살이를 했다. 엄마가 그 고생을 다 감수했다. 지금 엄마가 살아계시면 정말 잘해줄것같다. 너무 고생만 하시고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엄마가 58세에 돌아가셨다. '모이자 노래하자' 녹화 도중에 소식 들었다. 그래도 웃고 녹화하고 갔다.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날이었는데 서울에서 대전까지 4시간 걸렸다. 어머니는 벌써 돌아가셨다"며 "어머니한테 전하고 싶은 말은 욕심 안부리고 키만큼만 욕심 부리고 살겠다. 다른사람을 욕하지 않고 용서할거고 좋은일 하고 싶고. 괜찮은 놈이라는 말 듣도록 살겠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이후 이상용은 절친 김홍신 작가와 만났다. 김홍신 작가는 선행을 베풀어오던 이상용에게 닥친 시련을 언급했다. 다름아닌 그가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썼던 것. 김홍신 작가는 "정말 말도 안되는 억울한 사연이었다. 그전만해도 심장병 어린이 수술시켜주는 우리시대의 영웅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상하게 휘말려서 모함이다"라고 말했다.
이상용은 "평생을 다 바쳐서 600명 수술해줘서 잘 살아있는데 하나도 수술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전 국민이 지탄 하는거다. 나쁜놈으로. 저는 가만히 있었다. 하늘은 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논란 당시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했던 그는 "말도 마라. 미국에서 관광버스 가이드도 하고 하루에 14시간 버스타고 LA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관광버스 가이드를 했다. 그러다 무죄로 판결이 났다. 무죄선고를 받음과 동시에 신문에 안내주더라"라고 씁쓸함을 토로했다.
김홍신 작가는 "모함을 받은게 밝혀진거다. 그 순간에 저걸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더 좋아하게 된거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남한테 못할 이야기를 저한테 다 털어놓는다. 사적인 일, 개인적인 일을. 많은 사람이 진실 알고 있다. 다 그렇게 지나간거다"라며 "한창때는 이런생각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은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거라고. 운동도 했으니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재밌고 기쁘게 했냐. 그런 모습을 끝까지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이상용은 평소 절친한 사이였던 故현미를 향한 마지막 인사를 전하러 그가 잠시 머물렀던 장지를 찾았다. 이상용은 "여러분이 너무 좋아하던 마음속의 가수 현미 누나를 뵈러 왔다. 평소 저와 절친으로 저를 예뻐하고 좋아하셨다. 그래서 만나뵈러 왔다"고 밝혔다.
故현미는 지난달 갑작스런 사망소식을 전했다. 장지는 유족의 의사에 따라 미국으로 변경됐지만, 이상용은 한번 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고인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머물렀던 곳을 찾았다.
그는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사진이다. 액자 만들어서 가져 왔다. 마지막 머물렀던 곳이라서 사진 놓고 평소 옥수수 좋아혔다. 항상 가지고 다녔다. 옥수수 삶아서 꽃하고 놓고 여기서 마음적으로 명복 빌려고 한다"며 "부고를 듣자 마자 갔더니 빈소를 안차렸더라. 미국에서 자식들이 오지 않아서. 그래서 나중에 다시 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항상 상용이 동생이라 불렀다. 무대에서 '여러분의 밤안개 주인공 현미씨를 소개합니다'하면 나와서 '밤안개' 노래 나올때마다 튀어나오셨다. 활발하고 천상 연예인, 영원한 가수다. 사라지지 않은 가수. 살아있는 가수. 내가 소개하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것 같다"고 그리워했다.
그러면서 "누님 위에서 실컷 노래하고 우리한테 들리게 노래해달라. 들릴거다. 하도 목소리 좋아서. 꽃보다 아름다운 누나 잘 계시고, 죽지 않는 가수가 되어달라. 누나 안녕"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상용은 "한분 두분 가는걸 보며 내 차례로 돌아오는구나 생각 한다. 저 역시 열심히 하고 마음 바로잡고 늘 봉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겠다"며 "세상에서 제일 어렵게 태어난 내가 가장 건강한 뽀빠이가 돼있다는거 긍지롭고 자랑스럽고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일일이 대답하지 마라. 이유는 달지 말고. 삼삼하게 일하고. 사정없이 노력하라. 오 땡큐 자주하고' 육갑 떨지 말고. 칠십퍼센트만 만족해라. 팔팔 뛰면서 살고. 구구한 변명 하지말고. 10%는 사회에 반납하라"라는 십계명을 전해 뭉클함을 안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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