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규의한·미동맹사] 이승만, 美에 ‘태평양 동맹’ 요구하다

2023. 5. 14.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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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퇴임 연설에서 "외국과의 동맹을 경계할 것"을 당부했고,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취임 연설에서 "그 누구와도 동맹은 체결하지 않겠다"라고 못을 박았다.

미국은 '군사력'을, 한국은 '시설'을 제공하는 동시에 미군 주둔을 허용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는 다국적 태평양 동맹이 불가할 경우 미국은 한국과 단독으로라도 안보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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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퇴임 연설에서 “외국과의 동맹을 경계할 것”을 당부했고,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취임 연설에서 “그 누구와도 동맹은 체결하지 않겠다”라고 못을 박았다. 1823년에는 고립주의를 표방한 ‘먼로 독트린’이 발표됐다. 이러한 외교정책 기조는 19세기 말 미국 국력이 세계 최강이 된 이후에도 반세기 이상 유지됐다.
1947년 3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공산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자유와 독립의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국가에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 미국이 고수하던 고립주의와 상반되는 이 원칙은 이후 미국 외교정책의 바탕이 됐다.
1949년 8월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과 만난 이승만 대통령.
1949년 4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서방 국가 간 집단 안전보장 조약인 북대서양조약이 체결됐다. 미국은 1778년 프랑스와 동맹 체결 후 170여년 만에 처음으로 군사동맹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을 근거로 미국, 캐나다, 유럽 10개국 등 12개국이 참여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창설됐다.

한편 이승만 대통령은 일찍부터 ‘우방들의 호의와 도움이 없이는 우리의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 간의 친선만이 민족 생존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한국은 이미 북대서양조약 체결 직후 한·미동맹조약 초안을 작성했다. 1949년 4월18일 작성된 초안에는 한국이나 미국이 적국과 전쟁하면 양국은 ‘즉시’ 군사적으로 상호 지원하게끔 돼 있었다. 미국은 ‘군사력’을, 한국은 ‘시설’을 제공하는 동시에 미군 주둔을 허용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대통령은 1949년 5월14일과 16일 공개 연설을 통해 나토와 유사한 집단 안보체제인 ‘태평양 동맹’이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국적 태평양 동맹이 불가할 경우 미국은 한국과 단독으로라도 안보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후 그는 1949년 8월 장제스 중화민국(대만) 총통과 회담 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국제 공산주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집단 안보체제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최완규 육사 외래교수·경제사회연구원 국방센터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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