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에 선 국가폭력 피해자의 절규
“정부의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대하는 태도에 희망 잃어”
12시간 넘게 경찰과 대치…피해 보상 조례 제정 등 요구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씨가 14일 부산 광안대교 위에서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며 12시간여 농성을 벌였다. 최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정부가 책임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잃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날 오전 5시22분쯤 페이스북에 “광안대교. 상판. 다리 위에 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광안대교 위에서 촬영한 사진을 올렸다. 신고를 접수한 부산 남부소방서는 오전 5시31분쯤 응급차 등 차량 4대와 구조대원 16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현장엔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한 에어매트가 설치됐다. 최씨는 광안대교 상판과 하판 사이 난간에서 주 케이블과 상판을 연결하는 행어로프에 의지해 경찰 등과 대치했다.
최씨는 이날 아프리카 순방 중인 박형준 부산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오후 5시49분쯤까지 농성을 이어갔다. 그는 형제복지원 피해 보상과 관련한 부산시 조례 제정, 부산시장 면담 등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으나, 현장에 도착한 이성권 부산시 경제부시장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설득으로 농성을 철회했다.
최씨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국가가 책무를 피해, (다리 위에 올라가기로) 결심했다”며 “윤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들이나 위안부 할머니들을 제쳐두고 일본과의 미래를 먼저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정부가 대한민국에 의한 국가폭력은 신경이나 쓰겠느냐”며 “국가폭력 피해자로서 비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씨는 손해배상 소송 과정에서 정부의 태도를 보며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2021년 5월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같은 해 11월 생존 피해자 13명에게 국가가 25억원을 배상하라며 강제조정을 결정했으나, 법무부가 이의를 신청해 조정은 결렬됐다. 당시 법무부는 피해가 확정되지 않은 사안에서 조정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8월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법무부는 지난달 19일 열린 1차 변론기일에서 소멸시효가 지나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는 주장을 폈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이 나오고, 정권도 바뀌었으나 정부 입장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최씨는 “국가가 멀쩡한 사람들을 가둬 폭력을 자행해놓고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니 기가 찬다”고 말했다.
이상훈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법무부가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납북귀환 어부 직권 재심 청구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냈다”면서 “형제복지원 사건도 윗선의 결단이 있어야 항소 포기 등 구체적인 대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배상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특별법을 입안하는 등 방법은 많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의 형제복지원에서 1975~1987년 일어난 인권유린 사건이다. 불법감금은 물론 강제노역, 구타, 암매장 등이 자행됐다. 최씨는 15세이던 1982년 형제복지원에 감금돼 구타와 성폭행을 당했다. 최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 고공농성을 했다. 최씨의 농성으로 20대 국회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됐고, 2020년 5월20일 법안이 통과되면서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할 수 있게 됐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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