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책 옆구리에 끼고…일요일마다 낡은 건물 오르는 사람들
14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낡은 건물에서 만난 최사랑 씨(33)는 오뚜기일요학교에서 5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젊은 선생님이다. 공대 출신인 그는 이 곳에서 과학과 수학을 전담하고 있다.
최 씨는 “5년 전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날 겸 제가 가진 지식을 나누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며 “어느 순간 정이 들어 지금까지 선생일을 하고 있고 지금도 졸업한 오빠 언니 학생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오뚜기일요학교는 어릴 적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무료로 학습할 수 있는 현대판 ‘야학(야간학교)’이다. 이 학교의 역사는 198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집안 사정으로 학교에 가지 못한 신문배달소년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가르친 ‘시사영어학원’이 이 곳의 전신이다.
이 학교를 다닌지 어느덧 1년이 된 학생 신상섭 씨(61)는 “본인들의 일상도 있을 텐데 쉬는 날 학교에 나와 우리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에게 언제나 감사드린다”며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어머니 기일에 조퇴한 것 빼고는 매주 빠짐없이 학교에 나왔다”고 전했다.
인천 미추홀구시설관리공단에서 미화일을 하는 박재환 씨(58)도 “16살부터 공장일을 해서 배움의 시기를 놓쳤다”며 “검정고시 공부도 즐겁지만 때마다 학교에서 소풍과 수학여행을 가면서 친구들과 부대끼는 것 자체가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만학의 꿈을 쫓는 이들을 돕는 젊은 선생은 총 11명으로 나이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다. 특히 20대 대학생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자녀뻘’에 가까운 나이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이 학생들에 갖는 책임감 만큼은 어느 정식학교 선생님 못지 않게 투철하다.
오뚜기일요학교 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소지해야 하며, 이후에도 면접을 통과하고 수습기간을 거쳐야 정식 선생으로 인정받는다. 지난한 과정이지만 선생들은 보수 하나 없이 일종의 사명감으로 학생들의 검정고시 교육을 돕는다. 다양한 연령대만큼 선생들의 분야 또한 가지각색이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교육을 했던 선생님부터 기자, 엔지니어, 방송국PD 등 다양한 직업의 선생님이 학교를 거쳐 갔다.
이 학교 교장인 자영업자 조상영 씨(가명·45)는 4살 쌍둥이의 아버지로 학교에서 선생으로 봉사한 지 어느덧 6년째다. 그는 “아이들도 어리고 평일에는 일을 해서 일요일마다 나오는 게 쉽지 않지만 일종의 책임감으로 나오고 있다”며 “학교가 문을 닫으면 일요일만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이 어디를 갈 수 있겠나”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중학 학력 미만인 성인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408만명(9.8%)에 이른다. 통계치에 포함되지 않지만 사실상 의무교육이라 여겨지는 고등학교 졸업까지 기준에 포함하면 고등 학력 미만인 성인 인구는 10%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평생교육법에 따라 설립된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을 통해 성인문해교육 지원을 강화하고 있지만 실상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문해교육 관련해 국고 및 지자체 사업 지원 금액은 2006년 2203만원에서 2022년 9241만원으로 증액됐지만, 학습자 수는 같은 기간 1만4668명에서 7만9345명으로 더 크게 늘었다. 1인당 지원비는 연간 1164원에 불과한 셈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력을 취득한 이들은 총 2만2201명이다.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청년층이 타겟층이었다면 최근에는 70~80대 분들 다수가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계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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