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맛이 변한 단골집에 앉아 있는 당신의 ‘고민’[신경과학 저널클럽]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한다. 어느 학교와 직장을 갈지, 어떤 배우자를 만날지 같은 굵직한 결정부터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같은 일상적인 결정도 한다. 전략적인 의사 결정은 여러 동물이 환경에 적응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또 사람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가를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뇌 과학의 오랜 연구 주제였다.
포르투갈 샴팔리모 연구소 소속의 재커리 마이넨 박사와 알폰소 르노 박사가 구성한 연구진은 생쥐로 의사 결정 과정을 연구했다. 생쥐가 한 공간에 있는 두 개의 물통 중 어디에서 물을 마실지 정하는 비교적 단순한 행동을 들여다봤다.
의사 결정을 뇌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결정 변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정 변수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정보 중에서 무엇이 결정에 실제 영향을 주는지 설명하는 용어다.
예를 들어 배달 앱에서 음식을 시킬 때 어떤 사람은 배달 시간을, 어떤 사람은 음식의 맛을 중시한다. 이렇게 각 개인이 판단을 내리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보들이 결정 변수이다.
연구진 실험에서 목마른 생쥐는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위치한 두 개의 물통 중 하나를 골라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물은 왼쪽 또는 오른쪽 물통 중 하나에서만 나오는데, 이따금 물이 나오는 물통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왼쪽 물통에서 잘 나오던 물이 갑자기 끊기고, 오른쪽 물통에서 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는 뜻이다.
또 평소 물이 잘 나오던 물통에서도 10번 중 1번꼴로 물이 안 나오도록 연구진은 실험을 설계했다. 이런 여건을 생쥐 입장에서 보면 물이 대체로 잘 나오는 물통은 파악했지만, 항상 그곳에서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난 것이다. 이 때문에 생쥐는 전략적인 의사 결정을 통해 물이 나오는 물통을 찾아야 했다. 실험 결과, 쥐는 ‘추론 전략’과 ‘자극 전략’을 섞어가며 사용했다.
추론 전략은 지금 고른 물통에서 물이 나오지 않으면 결정 변수에 실패로 기록하다가도 한 번이라도 물이 나오면 0에서부터 실패 횟수를 다시 기록하는 방식이다. 비유하자면 단골집 음식이 실망스러울 때가 있더라도, 정을 떼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맛이 돌아오면 다시 충성 고객이 되는 식이다. 실험 속 생쥐의 입장에서 보면 평소 물이 잘 나오던 물통에서 어쩌다가 물이 안 나오더라도 몇 번의 시도 끝에 다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면 계속 특정 물통을 공략한다는 뜻이다.
자극 전략에서는 실패의 경험을 차곡차곡 결정 변수에 저장하고, 성공이 있더라도 초기화해 주지 않았다. 음식의 맛이 어떻든 세 번 실망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삼진아웃 식의 태도인 셈이다. 생쥐의 시각으로는 몇 번 시도 끝에 물이 안 나오는 물통에는 물을 마시기 위해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생쥐가 결정 변수를 뇌 어디에 기록해 두고 의사 결정에 활용하는지 찾기 위해 연구진은 뇌 속의 ‘이차운동피질’과 ‘안와전두피질’의 활성을 살펴봤다. 이차운동피질은 움직임을 계획하는 데 중요하고, 안와전두피질은 보상의 크기를 판단하는 것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분석 결과, 결정 변수에 관한 신경세포는 이차운동피질에 주로 담겨 있었다. 이차운동 피질을 억제하면 생쥐는 물통을 고르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이차운동피질에는 추론 전략과 자극 전략에 사용되는 결정 변수와 연관된 신경세포들이 각각 존재했다.
단골집의 음식에서 세 번 실망스러웠다면 재방문을 할지 말지는 양자택일의 문제다. 이때 갈까 말까 하는 마음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번 실험은 어떤 경우 간단한 결정도 너무 고민이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설명해 준다. 선택을 내리고 실행에 옮기는 순간은 바로 우리의 뇌가 결정 변수라는 고민거리를 끊임없이 계산한 결과라는 뜻이다.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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