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중간고사 강타한 챗GPT 커닝[만물상]
시험 있는 곳에 커닝이 따라붙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 조선 시대 과거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정행위를 막으려 응시자들을 여섯 자(약 1.8m) 간격을 두고 앉게 했지만 커닝 페이퍼를 콧구멍이나 붓 속에 숨기는 사례 등이 숱하게 적발됐다고 한다. 눈동자 굴려 답안 훔쳐보기는 기본이었다. 걸리면 곤장 100대에 3년 이상 중노동에 처했지만 커닝을 막지 못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커닝도 진화한다. 2005년 대규모 수능 부정행위 사건에선 원격 통신 수법이 등장했다. 일명 ‘선수’라는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고사장에 들어가 어깨나 허벅지 부위에 부착한 뒤 정답 번호 숫자만큼 두드려 신호음을 보내면 근처 고시원에 있던 후배 ‘도우미’들이 그 답을 다른 수험생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전달했다. 광주에서 발생한 이 부정행위로 314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됐다. 2012년엔 미국 하버드대에서도 대규모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당시 125명이 조사를 받았는데 이때도 휴대전화 등 통신 기기가 사용됐다고 한다.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가 나온 뒤 첫 대학 중간고사가 최근 실시됐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선 책과 인터넷을 활용해 ‘오픈북’ 방식으로 답하는 시험을 치렀는데 한 학생이 챗GPT가 알려준 답을 그대로 적어내고도 80명 중 22등을 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 학생은 취업 준비하느라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한다. 챗GPT로 ‘공개 커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수업 열심히 들은 친구는 24등을 했다고 한다. 공정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 몇몇 대학은 교내에서 챗GPT 사용을 금지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등은 이용을 금지했고, 미국 시애틀의 일부 공립고도 교내에서 사용을 제한했다고 한다. 최근 미국에선 특정 글의 작성에 AI가 사용됐는지를 분별하는 AI 감지기인 ‘GPT 제로’ 기술까지 등장했다. 챗GPT를 둘러싼 ‘창과 방패’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무조건 못 쓰게 막는 것이 정답일 순 없다. AI와 함께 살아야 하는 시대이고, 자료 검색에서 아직 이보다 좋은 수단이 없다. 잘 쓰는 것도 능력이 될 수 있다. 철학자 플라톤은 문자가 처음 등장하자 인간의 기억력을 망칠 거라고 사용을 반대했다. 하지만 스승 소크라테스의 말을 문자로 기록해 남긴 것도 그였다. 과학자들은 남의 논문 보며 연구하지만 출처를 밝히면 인용이 되고, 안 밝히면 표절이 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정당하게 쓰는 것이고, 평가도 정당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숙제가 우리 앞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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