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리오그란데 강의 ‘돈데보이’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국경지대 사이에는 길이 3051㎞의 강이 흐른다. 이름은 리오그란데.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민자들의 주요 경로다. 강만 건너면 미국 텍사스 땅이다. 미국행을 꿈꾸는 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도강을 시도한다. 강폭은 30여m 불과하지만 유속이 빨라 맨몸으로 건너기가 쉽지 않다. 해마다 수백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2019년 6월25일에도 강을 건너 미국으로 가려던 엘살바도르 출신 25세 아빠와 두 살배기 딸이 숨졌다. 강기슭에 엎어진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된 부녀의 모습이 세계인의 가슴을 쳤다. 2015년 튀르키예 해변에서 숨진 시리아 난민 꼬마 쿠르디를 떠올리게 한 사진으로 트럼프 정부의 무자비한 반이민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최근 중남미 출신 이주민들이 국경지대로 다시 몰려들고 있다. 국경을 무단으로 넘은 자를 즉시 추방하도록 허용한 미국의 ‘42호 정책’이 종료되면서 국경을 넘으려는 이주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도입한 이 조치가 11일(현지시간) 종료되면서 미 남부 국경지대에는 중남미인 수천명이 노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무단 입국자 급증에 대비해 미국 정부는 병력을 추가로 투입했다. 42호 정책이 끝남에 따라 이전 ‘8호 정책’이 다시 시행된다. 어떻게든 국경을 넘는다 해도 미국으로 망명하려면 하루 최대 1000명으로 제한된 온라인 입국 신청과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들 가운데 이 요건을 충족할 만한 이는 몇이나 될까.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어디로 가나요/ 희망이 나의 목적지일 뿐.” 1989년 멕시코계 미국 가수 티시 이노호사가 부른 돈데보이(어디로 가야 하나)는 일자리를 찾아 미국 국경을 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의 심경을 그렸다. 세기가 바뀐 지금도 ‘돈데보이’가 노래한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민자들이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것인지, 아니면 그 끝이 비극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늘도 강 너머에서 미국 땅만 바라보며 기회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미 국토안보부 자료에 따르면 약 66만명이 이달 초부터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기 위해 대기 중이다. 통계상으로 본다면 이들 대부분은 끝내 국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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