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 단협 최대쟁점 `65세 정년연장`
"올핸 물러서지 않겠다" 강경
청년고용 악화 맞물려 '고심'
65세 정년 연장 논의가 공공부문뿐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공론화될 조짐이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사측에 정년 연장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공무원·공공기관 정년연장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산업계에서도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오는 24일 임시 대의원회의를 개최하고, 단체교섭 요구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후 사측에 관련 내용을 보내는 등 일정대로라면 다음달 10일 전후로 노사 상견례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 안팎에서는 이번 임단협의 최대 안건으로 정년 연장이 꼽히고 있다. 현 노조 집행부는 2021년과 지난해에도 만 65세로의 정년 연장을 요구했으며, 작년에는 특근을 거부하는 등 파업 직전까지 몰고 갔던 적이 있다. 기아도 만 62세로 정년을 2년 연장하는 안을 올해 단협에 포함하기로 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다. 현대차 노조가 지난 3월 말 노조 확대간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6.9%가 올해 단체교섭의 최우선 의제로 '정년 연장'을 꼽았다.
현대차 노조가 이처럼 강경하게 나가는 이유는 조직원 가운데 4분의 1 가량이 3년 내 정년을 맞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년 연장이 되지 않을 경우 노조의 힘이 급격하게 약화될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현대차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7.6년이다.
다른 업종도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상황은 비슷하다. SK에너지와 포스코의 작년 말 기준 평균 근속연수는 20년 이상이고, 평균 연봉은 1억원 안팎이다.
이같은 요구에 기업들은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현재의 연공서열형 급여체계에서 정년을 1년만 연장해도 현대차의 경우 수천억원의 인건비가 더 들어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측은 숙련 노동자 재고용 제도와 같은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노동계는 재계약 기간이 짧고 기회도 제한적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정년 연장 공론화는 인구 고령화 및 저출산 추세와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는 2025년에 65세 이상 비중이 20.6%에 달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기업들은 정부가 급격한 고령화와 노후연금 고갈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무원 정년을 연장하는 등의 방안을 연내 내놓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정년 연장안을 내놓을 경우, 경영계는 노조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약해진다.
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인력운용 대전환이라는 화두와도 맞물려 기업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사람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인력보다 모터나 배터리를 만드는 인재가 더 필요하다. 기존 인력을 유지하면서 전동화 인력을 새로 뽑으면 인건비 부담만 가중된다.
고령화에 따른 인력부족 문제 해소를 위해 정부는 외국인 노동차 투입을 적극 투입했지만 기대했던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나오고 있다. 조선업계는 정부와 함께 지난 2월 외국인력 총 2000여명을 투입했는데, 현장에서는 업무숙련도 문제와 한국 노동자들과의 갈등, 심지어 마약 유통 등 사회적 문제까지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년 연장 논란에 대해 전문가들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임금체계 개편 등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적·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2013년 정년을 60세로 연장했을 땐 법안으로 의무화해 청년 고용이 악화됐다는 연구 보고서들도 있다"며 "그때처럼 강제적으로 정년 연장이 이뤄진다면 기업들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준비기간도 필요하고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도 법으로 정하기보다 일본처럼 재고용할 수 있는 여러 옵션을 도입하는 등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에선 기업이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보장하도록 하는 노력 의무를 규정한 새 '고(高)연령자 고용안정법'을 2021년 4월부터 시행 중이다.
박은희·장우진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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