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토링] 입방정, 돈봉투, 코인… 참 민망한 사람들
새 정부 출범 1년 지났지만
서민경제 악화, 수출 빨간불
정치권은 각종 사건과 망언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달라진 건 딱히 없다. 여야 정치권은 여전히 쌈박질 중이고, 경제는 도무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민생을 돌볼 여유도 없다. 어떤 당은 입방정을 떤 사람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고, 어떤 당은 돈봉투에 코인까지 아주 난리다. 이럴 때일수록 진짜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럴 만한 인물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적진포해전을 마치고 여수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함대의 탐보선이 달려와 전라도사 최철견의 서간을 전달했다. "4월 그믐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관서지방으로 몽진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순신은 한동안 망연자실하다 엎드려 통곡했다. 하급 장교들과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순신은 5월 9일 전라좌수영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병선과 군기 재정비에 나서는 한편 휘하 장수들에게 적이 언제라도 여수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조선 수군이 이번에 왜적 수군을 쉽게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순신의 철저한 준비의 결과물이다. 그는 판옥선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격군을 잘 훈련했다. 함포 사격과 활쏘기 임무를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 포수와 사수가 없었다면 승리도 없었을 것이다.
진을 파한 후 순신은 관사에서 옥포ㆍ합포ㆍ적진포 등 3개 전투에서 적을 격파한 성과를 기록했다. 갈 곳도, 의뢰할 곳도 없는 백성들이 승전한 수군 함대를 보고 기뻐하던 일, 그들을 안전지대로 옮겨오지 못한 것에 대한 유감 등도 함께 적어 선조에게 보고했다. 창고 5개 동을 가득 채울 만큼의 전리품 중 군량미 300여석은 각 병선에 배분하고 의복, 목면 등은 군사들에게 나눠줬다, 또 무겁지 않은 전리품은 첩서(승리를 알리는 장계)와 함께 조정으로 보냈다.
첫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지만 순신은 온갖 상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백성을 챙기지 못한 채 돌아왔다는 자책감에 가슴이 아팠다. '전투가 끝나면 피난민, 특히 어린아이들을 안전한 지대로 옮겨 주마'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
사실 순신의 직책으로는 백성을 도와줄 수 있을 만한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전라감사 이광에게 이런 사정을 구하는 한편 양곡을 보내 피해를 입은 백성들이 굶지 않도록 도와주길 간청했다.
순신이 조정에 올린 승전 장계 중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죽기도 많이 하고 노략 창탈도 많이 당해 살아남은 백성이 적습니다. 연해로 돌아다녀 보니 지나는 곳곳마다 피난하는 백성들로, 아군을 보고 울고 부르짖으며 따라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 측은함에 차마 두고 가기 어려웠습니다. 배에 태워 데리고 가고 싶으나, 전쟁 임무를 수행하는 데 불편이 있어 돌아오는 길에 데려갈 테니 잘 숨어 지내라고 달랬습니다. 그 뒤에 문득 들으니 성상이 한성을 버리시고 서관으로 몽진하셨단 놀라운 소식을 받고 급급히 돌아왔으니 그 애련한 정이 오히려 잊을 수 없습니다."
나라의 고위 공직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임난불망국臨亂不忘國(난세에 임하여 나라를 잊지 않음)'의 애국심과 애민愛民정신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재의 시선으로 순신의 글을 읽으면 '지도자가 어때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정치는 어지럽고, 경제는 어렵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14개월째 적자 행진을 기록 중이다. 정부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지만, 중국과 등을 돌린 상황에서 우리나라 수출이 얼마나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경제라도 좋아지면 그나마 다행이건만, 그렇지 않다. 미국의 올 1분기 경제 성장률은 1.1%(연율 기준)로 시장의 전망치 2%를 크게 밑돌았다. 유로존 20개국의 올 1분기 경제 성장률 역시 0.1%에 불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싱가포르, 잠비아에 이어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들이 속속 거론되고 있다.
상황은 이러한데 정치권에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사건만 터진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임 대표는 '돈봉투 사건'에 휘말렸고, 그 당의 한 젊은 의원은 수십억원대 코인을 이리저리 돌리다 궁지에 내몰렸다. [※ 참고: 그 젊은 의원은 14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무소속 의원으로 부당한 정치 공세에 끝까지 맞서 진실을 밝혀내겠다"며 탈당의 변을 밝혔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이라고 조용한 건 아니다. 어떤 최고위원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망언을 늘어놓고, 얼마 전 사퇴한 어떤 최고위원은 높은 사람의 눈치를 봤는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허언'이라고 주장해 빈축을 사고 있다.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기면서까지 '소통'을 강조했던 대통령이라고 다를 게 없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까지 생략한 채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들어야 할 건 듣지 않는'다. 그사이 민생은 도무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물가 때문에 점심을 편의점에서 해결하는 직장인, 취업이 어려워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 아이 때문에 직장을 나왔지만 재취업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단녀 등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해결된 건 거의 없다. 이순신 같은 시대의 영웅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
다시 순신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순신은 많은 고뇌의 시간 속에 다시 한번 통찰을 얻었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능동적으로 타개하려면 전라좌수군이 더욱 강해져야 했다. 군수품을 철저히 챙기는 한편 수군들의 훈련과 휴식 일정 관리에 역점을 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역점을 둔 것은 첫번째 출전에 동행하지 못했던 '거북선의 투입'과 해상 훈련이었다. 「난중일기」에는 임진년 5월 5일부터 28일까지의 기록이 없다. 그래서 이 기간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추측일 수밖에 없다.
여수로 돌아온 9일부터 28일까지 20일 가까이 순신은 수군 장병들과 함께 거북선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일기도 쓸 틈 없이 전력투구의 나날을 보냈다. 5월 29일부터 해상에 거북선이 본격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 무렵 옥포 등의 패전 소식을 받아 본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길길이 뛰면서 특명을 내렸다. "육군은 서둘러 조선왕을 생포하라! 수군은 조선의 서해안을 돌파하라! 수륙 양동작전으로 전라도를 정복, 원정군의 식량을 현지에서 조달하도록 하라!"
때마침 풍신수길의 수군 10여척이 전라도와 인접한 사천ㆍ곤양 등 경상도 해안을 돌며 마을에 불을 놓고 약탈을 자행했다. 왜적 함대를 피하려야 피할 수 없게 된 경상우수영의 원균은 수하의 이운룡, 기효근을 선봉으로 삼아 적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중위장 기효근이 겁을 먹고 달아나 버렸다.
화가 치밀어 오른 이운룡이 원균에게 강력히 주장했다. "기효근이 싸우지 않고 먼저 도망한 죄를 군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하지만 원균은 기효근을 두둔하기만 했다. 이운룡은 우치적, 이영남 등과 함께 일부 군사를 이끌고 약탈하던 적과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원균은 패잔병과 함께 노량으로 피신했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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