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버린 공정, 누가 지킬 것인가?

한겨레 2023. 5. 1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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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노조 부패를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로 규정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이라는 가치를 내동댕이친 게 틀림없다고 여길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가 대통령 자리에 있었던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누구라도 할 법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건 그야말로 큰 배신이다. 정치 신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대중의 인기를 얻었는가? 검찰 재직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비리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등 기득권 앞에서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의 수호자로서의 이미지를 다졌던 그가 아닌가? 실제 그는 이런 기대에 부응해 ‘공정과 상식’을 대통령선거 표어로 내걸기까지 했다.

흥미로운 점은, 사정이 이런데도 윤 대통령이 공정의 가치를 저버린 데 대한 비판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최근 10여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 화두로 떠오른 배경을 살피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여기엔 두가지 상반되는 성격의 계기가 있었다. 한편으로, 공정에 대한 요구는 우리 사회에 공고화돼 있는 기득권 구조의 타파를 지향했다. 이를테면 최서원(최순실), 조국 등 대통령 측근 자녀의 입시와 관련된 특혜 의혹은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켰는데, 여기서 공정이란 곧 기존의 관행을 바로잡는 것을 뜻한다.

반대 방향의 공정성 요구도 있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2020년 6월)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인천공항 같은 좋은 직장의 정규직이 되기 위해선 중고생 시절부터 끊임없이 노력해 좋은 대학엘 가고 시험도 통과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똑같이 겪지 않은 사람이 정규직으로 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문제뿐 아니라 지난 문재인 정권기에 여성차별 타파, 부동산 보유세 강화 등 적극적인 불평등 시정 정책들이 다방면으로 시도되면서 눈덩이처럼 커진 공정성 논란도 대체로 비슷하다. 똑같은 공정이지만, 여기서 공정은 기존 질서의 유지에 이바지하는 수사가 되고, 불평등 완화 움직임의 ‘백래시’로 제기됐다.

이렇게 놓고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초지일관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공정성만을 주장해온 셈이다. 그가 늘 ‘공정’을 ‘상식’과 짝지어 내놓는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여기서 상식이란 기존의 관행, 우리 사회와 제도에 공고화된 기득권 구조를 가리킨다고 봐도 좋다. 한편, 공정의 두가지 의미가 보기보다 명확하게 갈리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노조는 대체로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르는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기득권 집단으로 낙인찍혀 있기도 하다. 그러니 노조 공격은, 기득권의 타파와 유지를 지향하는 공정성 주창자들 모두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이런 복합성을 즐겨 전유하면서, 반쪽짜리 공정을 손에 쥐고 공정의 수호자인 것처럼 군림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을 내동댕이친 게 아니라, 그 나름의 공정(과 상식)을, 그러니까 지난 정권기에 정부의 무분별한 개입으로 짓밟혔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그 공정을 되찾고자 그 나름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한국 사회가, 그리고 이 시대가 윤석열이라는 인물에게 맡긴 일종의 시대정신으로서의 공정이 적어도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정신으로서의 공정이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모호하게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정권이 부여받은 시대정신은 누가 뭐래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평등들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공정 논란이 벌어졌고, 결국 문재인 정권은 그 과업을 완수하지 못했으니 더욱 그럴 터이다.

하지만 위에서 구별한 대로 공정이 기존의 관행을 변혁하는 것이기도 하다면, 그것은 불평등 시정과 다른 것이 아니다. 외려 그것은 불평등의 여러 양상을 조세 등의 수단으로 사후적으로 바로잡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불평등을 낳는 구조 자체의 반성과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곧 일자리나 소득 같은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는 이 사회의 공정성의 원칙을 새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 정권이 이런 과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 과업의 이런 성격이 충분히 토의됐더라면 윤석열이라는 인물이 그것을 짊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야당이든 시민사회든 이제는 새로운 공정성의 토대를 만드는 노력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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