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도 답 없는 너는 누구 [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난 이름도 없는 한 남자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바람둥이의 대명사 돈 후안이 자신을 사랑하는 뭇 여자들을 떠날 때 던지는 대사이다. 어리석게도 여자들은, 돈 후안이 천하의 바람둥이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그가 적어도 이번에는 그리고 자신에게만큼은 진심이었을 거라는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진심이라는 게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진심이 시작되는지 그 경계가 궁금할 때가 있다. 상대의 진심을 알고 싶다고, 나의 진심을 전하고 싶다고, 또 망나니처럼 살아왔어도 이것 하나만은 진심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도대체 진심은 어떤 것이길래, 모두가 그토록 갈망하는데도 꼭꼭 감추어져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진심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은 곧 우리가 평소에 진심 아닌 거짓 마음의 상태로 지내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유명한 시, ‘돌과의 대화’에서 시의 주인공인 ‘나’는 ‘너’인 돌의 진심에 닿기를 원한다. 여섯번이나 반복해서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조르는데, 돌은 매번 다른 이유를 대며 거절한다. 시가 제법 길어서 전문을 소개하기는 어렵고,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나, 돌의 문을 두드린다―나야, 들여보내 줘/ 돌이 말한다―내겐 문이 없다.”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귀에 익숙한 이 구절은 간절히 구하면 언젠가는 얻으리라는 자명한 진리를 전한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니, 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린다. 만일 열리지 않았다면 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두드리지 않은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 그러나 쉼보르스카의 시에는 정해진 결말이 아닌, 색다른 반전이 있다. 애초에 문 자체가 없을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상대의 진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빙빙 겉돌기만 할 때, 우리는 왜 진심이란 게 아예 부재할 거라는 의심은 하지 못했던 걸까.
좀 전에 나는 ‘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린다’라고 썼다. ‘아니나 다를까’라는 우리말 표현은 곱씹어 볼수록 무슨 의미인지 낯설어진다. ‘맞으나 같을까’라든가 ‘옳으나 비슷할까’라는 식의 유사 표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 혼자 예외적인 조어방식을 가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에는 반드시 예측했던 결과가 따라붙어야 한다. 이른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를 위한 숙어라고나 할까. 한국어에 뛰어나다는 인공지능(AI) 번역기 ‘딥엘’(DeepL)에 영어로 번역시키면, 두가지 답을 준다. 하나는 문맥에 맞게 ‘Sure enough(확실하게도)’이고, 다른 하나는 ‘No or different (아니거나 달라)’라는 엉뚱한 직역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몸 없는 누구 왕?>을 보시라. 미술을 좀 아는 분이라면, ‘어디서 본 듯한 이 작품, 아니나 다를까, 바스키아 맞구나’라고 할 만한 그림이다. 낙서의 방식으로 거칠게 그어댄 선, 두개골 느낌으로 처리한 얼굴, 그리고 별 뜻 없는 알파벳이 등장하는 이 그림은 미술계에 잘 알려진 바스키아의 작품을 바로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아니나 다를까, 바스키아’를 기대하는 사람에게, ‘아니거나 달라, 누구거든’이라며 궁금하게 하는 사이먼 후지와라(1982년생)의 그림이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사이먼 후지와라, Whoseum of Who〉 전시가 열린다. 전시장에 가보면 바스키아 외에도, 모조 피카소, 모조 모네, 모조 마티스, 그리고 모조 뒤샹이 있다. 모조 그림을 만들어낸 후지와라의 의도는 관람자에게서 ‘친근한데 누구지?’하는 반응을 자아내는 것이다. 누구지? 하는 물음표에 후지와라는 ‘누구’라는 공백의 존재를 답으로 들이댄다. 그때그때 변색하며 달라지는 카멜레온에게 네 살은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물어보라. 흰색이라고 할까, 아니면 검은색? 아니다. ‘아무’ 또는 ‘무슨’ 색이라고 대답하지 않겠는가.
바스키아의 흉내를 내다가 가면을 벗으면 후지와라가 될 것이라 예상하지만, 의외로 가면 아래에는 아무도 숨어있지 않다. 후지와라는 한 인터뷰에서 무언가에 대해 정해진 답을 가진 채 작업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름이 없는 이에게 이름을 묻는 것, 진심이 없는 이에게 진심을 보여달라는 것, 그리고 문이 없는 사물에 그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는 작품으로 제시한다. 누구의 그림들을 보며 ‘아니나 다를까’를 외칠 일은 생기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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