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뉴스] 4·3 학살터에 선 재일제주인 3세 "일본에서도 기억해야"

제주방송 권민지 2023. 5. 1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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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광풍이 몰아친 7년 7개월 동안 모두 3만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75년의 세월이 흐른 서귀포시 표선면 일대를, 재일제주인 3세대 10여 명이 찾았습니다.

정현하 / 리츠메이칸대 3 (재일제주인 3세)"할아버지의 생각과 마음을 생각하고 헤아려서, 제 표현으로 제주4·3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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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역을 참혹한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은 제주4·3.

4·3의 광풍이 몰아친 7년 7개월 동안 모두 3만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948년 12월 서귀포 표선 지역에선 토산리 주민 약 200여 명이 일주일에 걸쳐 잇따라 총살됐습니다.

75년의 세월이 흐른 서귀포시 표선면 일대를, 재일제주인 3세대 10여 명이 찾았습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한국말조차 서툴지만 그들의 뿌리가 있는 제주4·3의 역사를 배우고 공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주4·3 당시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기 전 임시 수용소로 활용됐던 표선초등학교.

진압 부대가 남겨둔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해 초등학생 30여 명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역사 기행에 나선 재일제주인 후손들은 무자비한 폭력과 탄압의 역사를 뒤늦게 알고는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양희화 / 긴키대 1 (재일제주인 3세)
"슬픔.. 그런 사건이나 사고가 있었던 게 진짜 놀랍기도 했어요. 저 같은 교포도 일본에 많고, 그들도 4·3에 대한 생각을 일본에서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4·3 당시 군 토벌대가 주둔했던 표선면사무소 옛터도 찾았습니다.

토벌대는 중산간 마을로 피신한 주민들을 이곳으로 붙잡아와 모진 고문을 가하고 취조한 뒤, 집단학살터인 한모살에서 총살했습니다.

한모살에선 거의 매일 학살이 집행됐고 어린이나 노약자의 희생도 적지 않아 당시 마을 주민들에게는 공포의 장소였습니다.

현재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지만, 4·3유족인 재일제주인들에게는 당시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정현하 / 리츠메이칸대 3 (재일제주인 3세)
"할아버지의 생각과 마음을 생각하고 헤아려서, 제 표현으로 제주4·3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4·3 당시 일본으로 피난 간 제주도민은 1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가운데, 제주4·3의 아픈 역사를 재일제주인 후손들이 온전히 기억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JIBS 권민지입니다.

(영상취재 강명철)

JIBS 제주방송 권민지 (kmj@jibs.co.kr) 강명철 (kangjsp@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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