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당신만이 죽었다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5. 14. 17:39
우리는 함께 잊자고 했다
잊을 수 있는 것들이 아직 있어서 좋았다
당신이 살았던 나라의 항구에는 계절마다 다른 꽃이 핀다고 했던가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쳐버리던 아침
계절이 바뀐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생각하였다
화란의 말을 잊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는 편지를 쓰지 못했다
눈먼 자바의 물소처럼 소리를 죽여 혼자 울었다
무엇을 위해 떠나왔는지
누구를 위해 돌아가야 하는지
세월은 이유를 남기지 않고 흘렀다
당신만이 유일했으나 당신만이 죽었다 -채인숙 作 '네덜란드인 묘지'
잊을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을 때 우리는 그 힘으로 산다. 그걸 사람들은 추억이라고 말한다.
묘비는 추억의 증표들이다. 우리는 묘비에서 추억을 읽는다.
시인은 먼 이국땅 낯선 언어로 쓰인 묘비에서 자신의 추억을 읽어낸다.
떠나온 자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을 흘린다. 그 스스로 이방인이므로….
유일한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그래도 추억이 있어 그 이름들을 부를 수 있다. 다행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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