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첫번째 이야기[출판 숏평]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우에노 지즈코, 스즈키 스즈미 지음 / 문학수첩 )
지금껏 여성으로 태어나 살면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피해자라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나는 메갈이 아니고, 약하지 않아”라며 끊임없이 누군가를 납득시켜야 할 것만 같은 불안감, 초조함, 그 어떤 감정들은 결국 여성이 여성을 배척하고 약함을 혐오한다는 결과를 도출해 낸다.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는 이론서나 학술서가 아니다. 세대가 다르고 걸어온 길이 다른 두 여성의 지나치게 솔직하고, 단호하며, 역사적인 이 대담은 무지의 영역에 서 있던 우리를 한계에서부터 시작하도록 만든다. (김정빈 / 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헌책 낙서 수집광(윤성근 지음 / 이야기장수)
책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그 외 수없이 많은 이들의 다종다양한 흔적이 경유하는 추억의 아카이브임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책에 얽힌 다양한 시간의 조각들을 모아 곱게 빚은 ‘헌책 낙서 수집광’은 디지털 콘텐츠 범람의 시대가 와도 책이라는 존재의 물성이 쉽게 휘발되지 않고 방주로서 계속 남아 있을 거라는 믿음을 전한다. 그리고 우리가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백한다. 책이라는 언어로. (김현구 / 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홍보위원)
■아가씨와 유모(게으른토끼 글·그림 / 포스타입 오리지널)
‘낯선 것들에 대한 이해’는 지겹고도 오래된 화두였다. 그러나 죽은 이의 신체 일부를 섭취하고 그의 모습으로 의태하는 ‘흉내쟁이 민달팽이’에 대한 전설은 여태껏 우리가 가늠해 온 ‘낯섦의 경계’를 재구축하게 한다. 두려워하거나 지배하려 드는 대신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할 것. 이 간단한 해답에 동의하지 못하고 머뭇대는 사이 우리는 점점 더 풍족해졌고 동시에 외로워졌다. 가까이는 유색인종부터 멀게는 가축과 야생동물 그리고 이제는 AI가 우리의 새로운 ‘흉내쟁이 민달팽이’다. 해묵은 논제 앞에서 오래도록 대답을 미뤄왔던 인간은 이제야말로 응답해야 한다, 낯섦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누구보다도 고독한 존재가 돼 버리기 전에.(박소진: 문화비평가, 웹소설 작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Nomad Century: How Climate Migration Will Reshape Our World(Gaia Vince 지음 / Flatiron Books)
2022년 강남 일대는 물에 잠겼고, 우리의 여름휴가를 책임졌던 동해의 모래밭도 잠겨 사라지고 있다. 인류세(Anthropocene)의 시작 이후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경고해 왔다, 수만 명이 죽어가는 여름의 폭염과 극단적인 강수량과 더 극단적인 가뭄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저 먼 북극에서 북극곰이 죽어간다는 기후위기 캠페인은 더 이상 절실히 와닿지 않는다. 터전을 잃고, 가족을 잃고, 식량을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것은 북극곰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사진 한 장 없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엔 앞으로 우리 앞에 다가올 선명한 장면들이 그려졌다. 그 장면들의 주인공은 북극곰이 아닌 바로 우리였다. 저자는 이제 우리의 목 끝까지 다가온 기후위기를 잘 정돈된 격앙의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이승진 / 문화비평가, 건축비평, 9N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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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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