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재정건전성은 '성역'이다

2023. 5. 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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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건전재정 가는 길 도처에
이기적 감세·선심 예산 유혹
적자폭 묶는 재정준칙 시급
예타 완화는 그 이후 문제

나랏빚이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그간 우리나라는 재정보수주의를 견지해온 덕분에 국가채무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재정에 적신호가 켜졌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지난해 역대 최대인 117조원이고, 국가채무(D1)는 지난해 말 1067조7000억원으로 최근 3년간 344조5000억원이나 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이 지난해 말 54.3%로 10개 선진 비기축통화국의 평균(52%)을 처음으로 넘어섰고 앞으로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미국(121.7%)이나 일본(261.3%)에 비해 크게 낮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한다.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미국은 자국 화폐를 세계 공통화폐로 유통시키는 기축통화국이고, 일본은 국가채무의 대부분을 국내 채권자가 보유하고 있어 외환 부족이나 국가 부도의 염려가 없다. 그런 미국도 요즘 조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 간에 부채 한도 상향을 위한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채무 비율이 GDP 대비 60%대에 이르면 위험 수준이다. 특별히 관리하지 않으면 이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재정건전성은 국가가 채무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 채무상환 능력이 충분한 지속가능 재정 상태를 말한다.

왜 나라 살림살이인 재정은 건전성이 생명인가? 재정적자가 쌓이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채무가 늘어 국가신용도가 하락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국가 부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국가채무 증가로 인한 부담은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되므로 세대 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특별한 자연자원이 없고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라서 시시각각 밀려오는 해외 충격을 흡수하면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재정이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극복한 것도 막대한 재원을 투입할 수 있었던 재정건전성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과거 남유럽 사례에서 보듯이 일단 재정건전성이 무너지면 재정위기가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재정은 경기 변동 대응능력이 상실되면서 나라가 흔들리게 된다.

그렇다고 매년 균형예산을 편성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성장이 둔화되는 등 경제가 어려울 때에는 적자예산을 편성할 수도 있고 국가채무가 늘어날 수도 있다. 핵심은 건전재정 기조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현재도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인 재정 규모나 역할을 줄이는 축소 지향적 균형예산은 더욱 정답이 아니다.

올해 1분기 국세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24조원이나 감소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향후 5년간 조세수입이 연평균 17조원씩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도 세금은 더욱 줄여주고 돈은 풀어 표를 얻으려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일상화되었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세부담률 적정화와 방만한 재정지출을 차단하기 위한 조세재정 개혁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전재정 기조를 강화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기적인 감세와 선심성 예산 증액 요구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제도와 시스템으로 재정건전성을 지켜내야 한다.

국회는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GDP의 2∼3% 이내로 묶어두는 재정준칙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예비타당성 조사 완화 문제는 그런 연후에 추진돼야 세입 기반을 항구적으로 잠식하는 감세 조치와 정치적 대형 재정사업을 차단할 수 있다. 미래 세대에게 부채가 아닌 희망의 자산을 물려줄 수 있다. OECD 국가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이용섭 전 국세청장·광주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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