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바라만 봐도 좋다 … 휴식 같은 정원
"상상의 나무·새 그리며
다양한 이야기 숨겨놓죠"
재난의 시대에는 푸르른 자연을 그린 그림이 유난히 사랑을 받는다. 한 땀 한 땀 세필로 나무와 꽃을 그리고, 해와 달과 별과 작은 새들을 숨겨 놓는 한국 화가가 있다. 이영지(48)는 25년 동안 소박하게 정원을 가꾸듯 그림을 그려왔다. 이 '영혼의 정원사'는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일약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완판' 작가로 거듭났다. 올해 화랑미술제와 아트부산에서 모두 매진되는 인기를 자랑했다.
6월 8일까지 이영지 개인전 'Stay with me'가 열린다. 2016년 첫 그룹전 이후 선화랑과 함께하는 3번째 개인전이다. 55점의 신작으로 선화랑의 3개 층을 모두 채운 전시 개막일인 지난 12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컬렉터들이 몰려들었다. 1년 만의 개인전이지만 작품 수가 놀랍도록 많다. 이날 만난 작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국 곳곳에서 멀리 서울로 전시를 찾아오시는 분들의 메시지가 온다. 그런 분들에게 한 점이라도 더 많은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전시를 앞두고 하루에 18시간씩 작업을 할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전통 채색화를 고집하는 그의 그림 속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작가는 이 세상에 없는 나무를 그린다. 아까시나무도, 능금나무도 아닌 상상의 나무다. 연인도, 친구도, 부모도 될 수 있는 다양한 관계의 새들이 얼굴 표정 없이 몸짓으로 말하며 자연과 교감을 나눈다. 마치 사람처럼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고, 와인잔 옆에서 나른해진 새도 있다. 의인화된 새는 작가 자신이기도,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는 "처음엔 새가 없이 나무만 그리기도 했다. 지나고 나서 보니 나무들이 외로워 보였는지 새를 그려넣고 이야기를 숨겨 놓았다. 덕분에 나도 재미가 있어서 지치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지에 배경을 채색하고 가는 붓으로 먹선을 셀 수 없이 긋는 고된 작업부터 한다. 실패할 때도 많지만, 색감이 부드럽게 스며든 날이면 운수가 좋은 날이다. 그렇게 캔버스가 완성되면 나무를 그려넣을 수 있다. 새와 달과 꽃들은 마지막에 그린다. 작가는 "그림을 채우는 건 쉬운데, 절제를 하고 빼는 건 점점 어려워진다. 어떻게 마무리할지 몰라 1년 이상 마침표를 못 찍는 그림도 숱하게 많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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