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진실하다 …'전설의 광대' 몸짓

고보현 기자(hyunkob@mk.co.kr) 2023. 5. 1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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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내한 슬라바 폴루닌
비눗방울·풍선·꽃가루 뿌려
남녀노소 동심의 세계로
"꿈 많던 시절로 돌아가보길"
슬라바 폴루닌 '스노우쇼'. Studio AL·LG아트센터

거대한 거미줄 장막이 별안간 객석으로 쏟아진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도, 고사리손을 가진 손녀도 다 함께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허겁지겁 거미줄을 뒤로 넘겨 보내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어어, 행여나 날 덮칠세라 당황한 추임새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흡사 놀이공원 롤러코스터에서나 들릴 법한 행복한 비명소리투성이다.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전설의 광대 슬라바 폴루닌이 오는 21일까지 '스노우쇼'로 관객을 만난다. 폴루닌은 찰리 채플린과 마르셀 마루소의 뒤를 잇는 광대 예술의 대부다. '스노우쇼'는 1993년 러시아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 100개 도시 투어를 돌았다.

펑퍼짐한 노란 옷에 빨간 코를 가진 광대는 몸짓 하나, 표정 하나로 관객에게 웃음뿐 아니라 위로까지 선물한다. 영국 올리비에 어워드를 수상하고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등 30년간 큰 사랑을 받았다.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바닥에 흩뿌려진 꽃가루를 보고 이미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을 터. 여느 무대와 달리 객석에는 모두가 아이로 돌아간 듯 설렘이 가득하다. 무심코 손을 뻗게 만드는 비눗방울과 풍선, 파도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돛단배,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빛 장식은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장난기 가득한 7인의 광대 공격(?)을 조심해야 한다. 객석으로 뛰어들거나, 물을 뿌리거나, 눈싸움을 걸 수도 있다. 인터미션까지 무대에 나타나 포옹을 나누고 실랑이를 벌인다. 눈살을 찌푸리는 이는 당연히 하나도 없고, 다들 박장대소를 터뜨리기 바쁘다. 공연 클라이맥스에는 '스노우쇼'의 대미를 장식할 거대한 눈보라가 몰아친다. 러시아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눈으로 뒤덮인 유년 시절을 보낸 기억에서 영감을 얻었다.

대사 없이 이뤄지는 무성 예술은 그가 무엇보다 큰 애정을 느끼는 요소다. 폴루닌은 "대사 없이 표현하는 것이 무대 위 그 어떤 대사보다 정직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전, 진주에서 공연을 마치고 서울을 찾은 '스노우쇼'는 이달 21일까지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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