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8원 인상 가닥… 한전, 미래 설비투자도 연기

정석준 2023. 5. 1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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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전 본사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전기요금이 국제 에너지 가격 추이를 따라가지 못해 한국전력의 자금난이 심각하다. 한전은 각종 자구안을 내놨으나 전기료 대폭 인상 없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8원 인상으로 가닥을 잡았다.

14일 한전 등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이 21조5940억원, 영업비용은 27조7716억원으로 6조1776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전은 2021년 2분기 7529억원 적자 이후 8분기 연속 적자행진이다.

한전은 누적적자 해소를 위해 25조7000억원 규모의 새로운 자구안을 발표했다. 한전은 지난 2월 20조1000억원에 달하는 재정건전화 계획을 발표했으나 전기요금 인상 열쇠를 쥐고 있는 여당의 고강도 자구안 압박에 5조6000억원 늘린 것이다.

한전은 수도권 대표자산인 여의도 소재 남서울본부 매각을 추진한다. 강남에 들어선 한전 아트센터와 서인천지사 등 사옥 10개도 임대를 우선 추진한다.

전력공급과 안전 등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일부 전력설비 투자건설 시기를 연기하고 규모도 조정해 2026년까지 1조3000억원을 절감한다. 업무추진비 등 경상 비용도 최대한 절감해 1조2000억원을 아낀다.

영업비용의 90%를 차지하는 구입전력비를 절감하기 위해 전력시장제도도 손질한다. 한전은 정부와 협의를 통해 운영예비력 기준 및 수요입찰 예측정확도 개선, 공기업 석탄발전상한제의 탄력적 운영 등을 통해 2조8000억원을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2만3000명에 달하는 전체 한전 임직원 임금은 동결되거나 인상분을 반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반납한 임금 인상분은 취약계층 지원에 활용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자구책이 한전 영업비용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전기요금의 대폭 인상이 없으면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전 누적 적자 규모가 45조원을 넘긴 상황에서 자구책 대로 3년 내 25조원을 아껴도 흑자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임금 동결과 설비 투자 지연 등도 논란에 휩싸였다. 전체 임직원의 임금 동결은 노조와의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한전 사측은 지난 12일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 다짐 대회'를 열고 노조에 동참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송전망 설비 투자 지연도 문제다. 한전은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전제 조건으로 달았지만 당장 동해안 송전선로 건설 사업과 남부지방 신재생에너지 전력계통 문제 해결을 위한 송전망 확대는 투자가 불가피한 시급한 현안으로 꼽힌다. 또 최근 전력 수요가 높은 여름, 겨울철 뿐만 아니라 봄, 가을에도 전력 수요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전력계통 투자 지연은 미래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전은 올해 2월까지 전북·전남·광주·경남 일대 태양광 설비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송·변전 설비에 대한 사전점검을 월 1회에서 주 2회로 강화했다.

민간에서도 투자 규모 축소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가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1조원 이상의 전력 공급망 확보 사업도 한전의 주요 투자처다. 대한전기협회와 한국전기기술인협회, 한국전기공사협회 등 10여개 전기산업 관련 단체로 구성된 전기관련단체협의회는 "한전의 적자 가중으로 국내 전기산업계는 생태계 붕괴가 우려될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전기요금 인상 촉구했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이미 임금 상승 폭에 대해 불만이 나오기도 했는데 같은 국민인 직원들만 손해를 봐야하는지 의문"이라며 "설비 투자 연기는 추후 사고 발생 시 또 다른 책임 전가 요소로 남거나 미래 발전을 발목잡는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구안 발표와 동시에 사의를 표명한 정승일 한전 사장은 입장문을 통해 "전기요금 정상화는 한전이 경영정상화로 가는 길에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현재 전력 판매가격이 전력 구입가격에 현저히 미달하고 있어 요금 정상화가 지연될 경우 전력의 안정적 공급 차질과 한전채 발행 증가로 인한 금융시장 왜곡, 에너지산업 생태계 불안 등 국가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석준기자 mp1256@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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