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리 역전' 3번 잘견뎠지만 … 4번째는 '외줄타기'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3. 5. 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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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옷을 사러 갔을 때 미국산 옷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보다 질도 좋고 가격도 싸다면 그 물건을 선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두 번은 우리나라 기업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발동해 미국산 옷을 외면할 수는 있지만 매번 시장에 갈 때마다 같은 환경이라면 미국산 옷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옷의 질을 미국보다 향상시켜 비싼 값을 받거나 질이 떨어진다면 가격을 내리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금융시장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금융시장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상품은 채권이다. 한국이 발행한 채권이 미국에서 발행한 채권보다 값도 비싸고 질도 떨어진다면 한국 채권에 투자할 사람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채권의 '질'로 평가되는 대표적인 지표는 국가의 신용도다. 신용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린 국가나 기업이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Moodys)가 평가한 미국의 국가신용도는 평가 지표 중 가장 높은 수준인 'Aaa' 등급이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미국보다 두 계단 낮은 'Aa2'다. 국가신용도로만 본다면 미국이 찍어낸 국채의 질이 한국의 국채보다 질이 좋은 셈이다. 채권의 값은 금리로 표시된다.

금리가 높을수록 채권 값은 싸진다. 채권 값의 기준은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다. 기준금리는 만기 7일 이내 초단기 채권의 금리로 활용된다. 이를 기준으로 만기 1년, 2년 등 중장기 채권의 금리가 결정된다.

5월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5.25%(상단 기준), 한국은 연 3.5%다. 14일 현재 1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연 4.791%, 같은 만기 한국 국채 금리는 연 3.360%다.

1억원짜리 미국 채권을 사서 1년을 보유하면 479만원을 이자로 받을 수 있는 반면 한국 국채를 사면 336만원을 이자로 받는다는 계산이다. 신용도가 높고 기준금리도 1.75%포인트나 차이가 난다면 미국 국채에 자금이 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옷을 파는 실물과 기본은 비슷하지만 금융시장은 그래도 조금 복잡하다. 채권에 투자할 때는 가격, 신용도와 함께 경제 상황, 향후 경기 전망, 정책 방향 등도 고려 대상이 된다. 이런 변수들에 따라 채권 값이 큰 폭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인지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이 한국보다 금리가 높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곧바로 투자자들이 한국 채권을 던지고 미국 채권으로 몰려가지는 않았다. 1990년대 이후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가 역전된 적은 이번을 포함해 총 4번 있었다. 1999년 6월부터 2001년 2월까지 21개월간, 2005년 8월부터 2007년 8월까지 25개월간, 2018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24개월간 등이다. 그리고 2022년 7월부터 현재까지 총 11개월간 한미 기준 금리가 역전된 채 진행되고 있다. 이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기준금리는 미국보다 항상 높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처음 금리가 역전된 기간인 1999년 6월~2001년 2월 외국인들은 순매수 기준으로 우리나라 주식을 41억달러어치 팔았다.

반면 우리나라 채권을 209억달러어치 사들였다. 둘을 합하면 우리나라 증권시장에 168억달러의 외국인 자금이 순유입됐다.

한미 간 금리 역전으로 돈이 해외로 빠져 나갈 것이라는 예상과 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두 번째 금리 역전 기간(2005년 8월~2007년 8월)에 외국인들은 주식을 568억달러 순매수했고 채권은 263억달러 순매도했다. 세 번째 기간(2018년 3월~2020년 2월)에는 주식을 487억달러 순매수, 채권은 84억달러 순매도했다. 3번의 기간 모두 주식과 증권을 합한 증권시장에서는 자금이 순유입됐다.

자본 유출이 본격화하지 않으면서 달러당 원화값도 비교적 안정됐다. 첫 번째 금리 역전 기간 동안 월평균 달러당 원화 환율은 1160원, 두 번째 기간에는 평균 963원, 세 번째는 평균 1142원 등이다.

그럼 이번에도 한미 금리 역전으로 금융·외환시장이 동요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몇 가지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먼저 역전 규모와 기간이 과거보다 크고 길다.

5월 현재 한미 기준금리 차이는 1.75%포인트로 사상 최대치다. 과거 한미 금리 차가 가장 컸던 때는 2000년 5월부터 2000년 9월까지 4개월간 1.5%포인트만큼 벌어졌던 시기였다. 미국을 제외한 주변 국가와의 금리 차도 과거보다 벌어졌다. 과거 세 차례 한미금리가 역전됐을 때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유럽, 캐나다 등 다른 선진국보다는 높았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유럽(연 3.65%), 캐나다(연 4.5%)는 물론 영국(연 4.25%), 호주(연 3.85%)보다도 낮다. 스위스(연 1.5%), 일본(연 -0.1%) 정도만 한국보다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되는 기간도 과거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거 한미 금리 역전은 우리나라 통화정책보다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의해 발생했고 미국의 금리 인하를 통해 해소됐다. 이번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우리나라가 현 수준 금리를 유지한다면 미국이 1.75%포인트 이상 금리를 낮춰야 한미금리 역전 현상이 해소될 수 있다. 미국 경기와 고용 상황이 호조세를 보이면서 미국 금리 인하의 시점이 늦춰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한미 금리 역전 기간은 과거 20~24개월보다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 주변을 둘러싼 여건도 과거보다 좋지 않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역수지다. 과거 세 차례 한미 금리 역전 기간에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월평균 13억~70억달러 정도 흑자를 기록했다. 실물 부문에서 달러 유입이 계속됐던 셈이다.

반면 이번 금리 역전기간(2022년 7월~2023년 4월)에는 월평균 57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실물 부문에서 달러 유출이 계속 발생하는 상황에서 한미 간 금리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역전되면 작은 충격에도 외환·금융 시장이 크게 휘둘릴 수 있다. 거시 경제지표도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부분이다.

첫 번째 금리 역전기 우리나라 분기별 평균 성장률은 10.5%,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월평균 2.7%를 기록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성장률이 급락했던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장률이 급등하던 국면이었다.

두 번째 금리 역전기는 분기 성장률이 평균 5.3%, 물가상승률은 2.3%였고 세 번째 역전기에는 평균 성장률은 2.4%,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9%였다.

하지만 이번 기간에는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평균 1.7%,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1%를 기록 중이다. 역대 한미 금리 역전 기간 중 성장률은 가장 낮고 물가상승률은 가장 높다. 무역수지는 연일 적자를 기록 중이고 성장률은 하락, 물가는 고공행진을 벌이면서 거시경제 환경이 가장 좋지 않은 국면에 한미 금리 차까지 최대로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달러당 원화값도 1300원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경기 흐름도 과거에 비해 유리하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를 기준으로 평가한 경기 진행 국면을 살펴보면 첫 번째 금리 역전기에는 경기가 상승-하강-상승을 반복하는 역동적인 국면이었다. 두 번째 금리 역전기의 경기는 완연한 상승 국면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와 현재 경기는 하강 국면이다. 경기가 상승할 때는 주식시장이 호황을 보이고 이를 기대한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이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주식투자 자금의 적극적인 유입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금리가 높은데 채권투자 자금이 많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에는 '한미 금리 역전→환율 상승→무역수지 흑자·경기 회복→외환시장 안정'의 일종의 선순환 고리가 형성됐던 반면 지금은 '한미 금리 역전→환율 상승→무역수지 적자·경기 침체→환율 추가 상승→자본 이탈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에서 연일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면서 은행이 갑자기 문을 닫는 '은행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3월 중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고 5월에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JP모건에 강제 매각됐다.

은행 예금은 계속 줄어들고 대출은 위축되면서 신용경색 가능성도 제기된다. 처음 사태가 터졌을 때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나서서 유동성을 공급해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연준도 인플레이션 위험을 감수하면서 계속 돈을 풀기는 어렵다. 이 과정에서 미국 금융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은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달러들도 미국 사태 변화에 따라 큰 폭으로 출렁거리면 세계 각국의 외환·금융시장은 요동친다. 이 과정에서 환율이 불안하거나 경제 여건이 안 좋은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우리나라가 희생양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나라 금융 정책의 공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물가는 높고 경기는 위축되고 있어 금리를 올려 해외로 이탈하는 자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돈을 풀어 환심을 사려는 포퓰리즘적 정치 논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면 우리나라 대내 문제와 대외 문제가 서로 뒤섞여 경제 원칙이 무너지고 시장 혼란은 심해진다. 한미 금리 차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확대되고 무역수지가 대규모 적자를 보이는 등 대외균형이 불안한 상태에서는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도 대외균형 확보에 둬야 한다. 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대외경제가 안정돼야 국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정책의 공간이 생긴다. 현실적으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지 못할 상황이라면 한 마리 토끼라도 확실히 잡는 것이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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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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