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무너지는 장남 특권과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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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제사를 주재하는 자'는 장남이라던 기존 판례가 지난 11일 파기된 것은 15년 만이다.
그러나 이번엔 장남·장손자 등을 제사 주재자로 우선하는 건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정신에 어긋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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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제사를 주재하는 자’는 장남이라던 기존 판례가 지난 11일 파기된 것은 15년 만이다. 유족 간 합의되지 않았을 경우 부모의 장례나 제사 등은 남녀성별에 관계없이 연장자가 주재해야 한다고 결정해 국민 일상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이번 소송은 혼외자를 둔 남성 A씨가 사망한 뒤 그 아들이 이복누이들과 협의 없이 유해를 납골당에 봉안하면서 비롯됐다. A씨 본처와 딸들이 “유해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고, 1·2심은 2008년 대법 판례를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장남·장손자 등을 제사 주재자로 우선하는 건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정신에 어긋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 서자차별보다 질겼던 남녀차별을 제사영역에서 끊어냈다는 평가가 두드러진다. 제사는 한국사회 가부장적 관습의 대표격이다. 장남은 부모의 유해와 분묘 등 제사용 재산소유권도 갖는다. 하지만 제사 자체가 친족 간 우애를 확인하긴커녕 ‘왜 장남만 모셔야 하느냐’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과도한 가사노동과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차례상을 마련하기 위해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은 ‘명절증후군’은 주로 큰며느리에게 떨어진다. 가정의 평화에 금이 가는 셈이다.
□ 지난해 9월엔 추석을 앞두고 성균관이 ‘반성문’ 성격의 기자회견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차례상 간소화 표준안을 발표하며 “명절 끝에는 ‘이혼율 증가’로 나타나는 현상이 유교 때문이란 죄를 뒤집어써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조율이시’(대추·밤·배·감) 등은 예법 관련 옛 문헌에 없는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 요즘 젊은 부부 세태와는 거리가 있지만 ‘여성차별적 시댁 호칭’이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시댁의 종과 같이 취급한다는 것이다. 부인의 남동생은 처남, 여동생은 처제로 낮추고 남편의 남동생은 도련님, 여동생은 아가씨로 높여 부른다. 후자의 경우 종이 상전을 대하던 표현으로 읽힌다. 장남의 특권이 무너진 판결을 보면, 인종·나이·성적 지향·학력 등 지금은 굳건해 보이는 다른 차별의 벽도 붕괴될 날이 생각보다 머지않을 수 있다.
박석원 논설위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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