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만에 27%→70%···공론조사, 비례대표 확대로 여론 바뀌었다

문광호·탁지영 기자 2023. 5. 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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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 여론조사 결과. KBS 유튜브 갈무리.

“저도 이 자리에 참석하기 전에는 국회의원 수는 무조건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와서 전문가와 시민참여단의 의견을 통해 ‘의원 숫자가 줄어드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남 진주에서 온 김보미씨는 지난 13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실시한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 토론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국가별 인구 3만명당 국회의원 숫자를 비교해 보니 한국 의원 수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정개특위는 시민참여단 500명을 대상으로 지난 6일과 13일 선거제 개편 주요 의제에 대한 숙의 과정을 거치게 했다. 숙의 과정은 패널토의, 전문가 질의응답, 분임토의 등으로 진행됐다. 숙의 전후 입장 변화를 확인하기 위한 시민참여단 공론조사도 두 차례 이뤄졌다. 숙의 전 조사는 지난 1~3일에, 숙의 후 조사는 지난 13일 숙의 토론이 모두 종료된 이후 실시했다. 숙의 기간 내내 시민참여단의 질문을 받은 전문가들은 “토론을 거듭할수록 질문 수준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숙의 전후로 입장을 바꾼 시민들이 많았다는 점으로 드러났다. 정개특위가 지난 1~3일과 지난 13일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시민참여단 469명을 대상으로 두 차례 조사한 결과 ‘비례대표를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숙의 전인 지난 1~3일 조사 27%에서 숙의 후인 지난 13일 70%로 43%포인트 증가했다. ‘지역구를 더 늘려야 한다’는 답변은 숙의 전 46%였으나 숙의 후 10%로 36%포인트 떨어졌다. ‘현행 유지’는 16%에서 18%로 늘었다.

의원 정수에 대한 여론 변화 폭도 컸다. ‘국회의원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답변은 숙의 전 조사에서 13%에 그쳤지만 숙의 후에는 33%로 20%포인트 늘었다. 반대로 ‘국회의원 수를 더 줄여야 한다’는 응답은 숙의 전 65%에서 숙의 후 37%로 하락했다. ‘현행 유지’는 18%에서 29%로 늘었다. 숙의 과정에 참여했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숙의 조사에서 이 정도로 큰 변화는 사실 잘 일어나지 않는다”며 “게다가 이건 기간도 굉장히 짧았기 때문에 더 놀라운 변화”라고 말했다.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시민참여단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에서 참여자들이 분임 토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이 그동안 선거제도 개혁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데 무책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정치인들이 선거제 개혁 필요성을 설득하는 대신 ‘의원 수 확대는 국민들이 반대한다’는 구호만 되풀이하며 정치혐오를 부추겼다는 주장이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이번 조사는) 그동안 선거 제도에 대해 얼마나 정보 공급이 안 됐고 시민들이 숙의할 공간이 부족했는지를 보여줬다”며 “‘국민들이 싫어하니까 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말만 하고 왜 줄이거나 늘려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은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례대표 의원 수 확대 여론이 숙의 결과 큰 폭으로 상승한 이유에 대해서는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의 선호도가 낮아진 점과 연결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민참여단은 지역구는 중·대선거구제(50%→44%)보다 소선거구제(43%→56%)를, 비례대표는 권역별(45%→40%)보다 전국단위 비례대표제(38%→58%)를 상대적으로 더 선호했다. 박원호 교수는 “정치권에서는 비례성 문제, 사표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시민들은 그 문제를 중대선거구가 아니라 기존 비례대표제 확대로 해결하자는 것”이라며 “내 국회의원이 누군지 딱 한 명으로 정해져 있고 뭐가 잘못되면 이 사람한테 책임을 묻는, 소위 책임성의 원칙이 없어지는 걸 사람들은 싫어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의원 정수 확대 찬성 여론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의원 숫자를 줄여봤자 오히려 소수한테 권한이 더 독점되고, 행정부 권한이 더 세지지 않느냐”라며 “그런 의견도 듣고 또 자료를 보면서 사람들이 설득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선거제 개편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공론화 회의 폐회사에서 “공론 결과가 여야가 협상으로 최종안을 만드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며 “선거제 개편은 금년 상반기 중에는 마무리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개특위는 이번 공론조사와 전원위원회 토론 내용 등을 참고해 선거제도 개편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남인순 정개특위 위원장은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더 다양한 사람들이 비례대표로서 의원을 해야 된다는 공감을 얻은 것 같다”며 “국민들이 내주신 결론이기 때문에 중요한 지표로 향후 심사 과정에서 많이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은 이번 조사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시민참여단의 다수 의견대로면 현행 소선거구제, 전국단위 비례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정개특위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은 “공론조사 하면 다 비례를 늘려야한다고 나온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비례대표가 책에 나온 것처럼 좋은 제도로 활용되지는 않다”며 “공론조사가 참고는 되겠지만 결국은 여야 협상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공론조사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웹조사 방식으로 진행됐고 지난 13일 KBS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 생방송에서 공개됐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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