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으로 시청률 16% 돌파한 《닥터 차정숙》의 저력

하재근 문화 평론가 2023. 5. 1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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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고공행진에 17개국 넷플릭스 톱10
주부 인생역전 복수극 또 통했다

(시사저널=하재근 문화 평론가)

한때 위기라고 했던 JTBC 드라마가 요즘 살아나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 대박에 이어 《대행사》도 성공작이었는데, 지금은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이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4월15일 첫 방송된 이후 4회 만에 시청률 10% 벽을 넘어섰고 8회에 16.2%를 찍었다(전국 유료가구 기준). 

화제성도 크다. 굿데이터 코퍼레이션에 따르면 드라마와 OTT를 포함한 통합 차트에서 4월 3주 차에 1위를 달성했다. 5월8일 월요일 오후 2시 기준 네이버TV 인기영상 톱100에 《닥터 차정숙》 방송 클립이 19개나 진입했다. 방송 다음 날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콘텐츠 인기영상 톱100 중에서 이 드라마 혼자 19%를 차지한 것이다. 최소한 주말 방영작 중에선 가장 크게 관심을 끌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화제성이 시청률 수치 16.2%를 이미 뛰어넘은 수준이다. 

넷플릭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1위, 태국·필리핀·베트남 3위, 싱가포르 4위, 일본·사우디 5위 등 17개국 넷플릭스 톱10 차트에 오를 정도로 해외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역대 JTBC 드라마 시청률 순위는 《부부의 세계》가 28.4%로 1위, 《재벌집 막내아들》이 26.9%로 2위, 《스카이캐슬》이 23.8%로 3위다. 《닥터 차정숙》의 상승세가 지속돼 3위권 안에 진입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 포스터ⓒJTBC 제공

아는 맛이라서 강하다 

신선하거나 기발한 설정의 작품은 아니다. 정반대로 어디서 본 듯한, 너무 많이 봐서 '뻔할 뻔자'라고 느껴질 정도로 조금 과하게 익숙한 설정이다. 지금까지는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가 예상될 정도로 도식적인 구도였다. 하지만 시청자는 열광했다. 흔히 사람들이 신선한 걸 원한다며 이미 많이 본 설정은 식상해한다고들 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은 아는 맛을 찾을 때도 많다. 라면, 떡볶이, 치킨, 삼겹살 등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강력한 아는 맛의 주인공들. 이들을 일컬어 '소울 푸드'라고까지 말한다. 

드라마에도 그런 강력한 아는 맛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닥터 차정숙》과 같은 주부 인생역전 복수극이다. 남편과 시댁에서 무시당하고 사회적으로 무기력했던 주부가 일약 능력녀로 입신하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남편과 시댁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이때 남편은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여성과 바람을 피우는 설정이 많은데, 자기 아내가 사회적으로 입신한 후 뒤늦게 아내의 매력을 깨닫고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잘나가게 된 아내 곁엔 능력 있고 잘생기고 키도 큰 연하남이 다가온다. 남편은 결국 일과 재산에도 문제가 생겨 사회적으로 좌절을 겪게 되거나 아예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잘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내연녀도 남편에게 족쇄가 돼버린다. 한마디로 남편은 추락하고 아내는 백조로 비상한다는 설정. 

이 아는 맛이 짜릿하다. 이런 설정에 양념을 독하게 치면 막장드라마가 된다. 이미 《아내의 유혹》이나 《조강지처 클럽》 같은 신화적인 성공작들을 배출했다. 《닥터 차정숙》은 그렇게 양념이 독하진 않아 막장드라마가 아닌 일반 주말드라마 버전 정도의 수위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차정숙은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무시받는 전업주부다. 남편은 대학병원 교수로 차정숙을 돌 취급하면서 각방까지 쓴다. 동료 여의사와 바람도 피운다. 시어머니는 건물주 상류층으로 며느리를 일해 주는 사람 정도로 여긴다. 사돈조차 무시한다. 경제력 없고 사회적 능력 없는 차정숙은 집안에서 큰소리 한 번 못 내는 처지다. 

그런데 어느 날 차정숙이 갑자기 남편이 일하는 대학병원 전공의가 된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아무튼 그렇다. 사실은 차정숙이 20년 전 뛰어난 의대생이었는데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됐다 이제야 꿈을 펼친다는 설정이다. 서서히 차정숙의 자존감이 회복되고 시댁엔 파국의 그림자가 짙어진다. 남편의 바람이 들통나고, 차정숙 곁엔 연하 미남이 다가올 거라 예측됐었는데 그대로 흘러왔다. 차정숙이 남편의 바람을 알아채는 8회에 시청률 16%를 돌파했다. 앞으로 건물주 시어머니의 자산에도 문제가 생겨 시댁의 콧대가 납작해질 거로 예상된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한 장면 ⓒJTBC 제공

대중의 한과 욕망 반영 

이렇게 말이 안 되는 한편, 뻔하게 예상대로 흘러가는 구조가 시청자에게 쾌감을 준다. 말이 안 되는 부분은 그만큼 현실에선 실현되기 힘든 일이지만 드라마 주인공을 통해서나마 대리만족하는 계기가 되고, 뻔하게 흘러가는 건 그게 바로 시청자의 욕구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씻김굿이 된다.  

뻔한 설정이 계속 성공하는 이유는 시청자 다수가 원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한과 욕망이 계속 반영되는 속에서 전형적인 설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딱 봐도 알 정도로 정말 뻔한 설정은 그만큼 대중이 그것을 강력하게 원해 왔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의 익숙한 설정은 시청 대중의 간접적인 집단창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부 인생역전 복수극이 대표적인 아는 맛이 된 건 그만큼 우리나라에 억눌려 사는 주부가 많다는 뜻이다. 경력 단절로 사회적 무력감을 느끼는 여성도 많다. 그런 이들의 한이 '원기옥'처럼 모여 익숙한 설정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는 아는 맛을 원한다. 

《닥터 차정숙》은 딱 보는 순간 그런 원기옥을 담아낸 '아는 설정' 같았는데, 만약 중간에 신선하게 한다고 이야기를 비틀었다면 시청자는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기대했던 대로, 예상했던 대로 아는 맛을 그대로 구현해 주니까 시청자의 막힌 속이 뻥 뚫리면서 시청률이 폭발했다. 앞에서 17개국 넷플릭스 톱10에 올랐다고 했는데, 그곳들도 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한 나라들이다. 거기에도 여성들의 원기옥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아는 설정을 기계적으로 배치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런 설정에 작품의 완성도로 숨을 불어넣어야 드라마가 생동하게 된다. 《닥터 차정숙》은 배우들의 연기, 대사, 캐릭터 등이 모두 수준급으로 일단 작품이 재밌다. 요즘처럼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시절에 잠시나마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코믹터치로 채널을 고정시켰다. 그런 코믹터치 속에서 아내를 무시했던 남편이 망가지고, 며느리 무시하던 시어머니가 당황해하는 사이다 장면이 빵빵 터졌다. 

8회 마지막 부분에 장차 차정숙이 독립을 선언한다는 예고편이 나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차정숙이 각성하고 남편은 벼랑으로 몰리면서 시청률도 우상향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마의 20% 선을 넘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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