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화제의 책]

엄민용 기자 2023. 5. 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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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표지



길을 가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면 “오랜만이다. 우리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평소에는 생각없이 지내다가 전화를 받으면 무척 반가운 이로부터 “잘 지내지? 우리 밥 한번 먹어야지”라는 소리를 듣고 눈물이 핑 돌 때도 있다. 또 너나없이 하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다”라는 말 속에는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가 담겨 있다.

이처럼 우리는 지나가는 말로, 인사치레로, 혹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 ‘밥’을 핑계 삼는다. 그리고 ‘밥 한번’은 저마다에게 기쁨으로, 슬픔으로, 감사로, 아픔으로 다가온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은 밥 한 끼가 아쉽지 않은 세상을 산다. 물론 밥 한 끼가 절실한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끼니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때가 되면 ‘밥’을 찾는다. 우리 모두는 매일의 한 끼를 위해 사는 셈이다. 밥이 곧 삶이고, 사람이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음식을 마주하고 경험한다. 음식은 ‘먹을 것’이며, 그 ‘먹을 것’의 대부분은 기억과 함께한다. 원초적인 맛은 ‘어머니의 손맛’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맛은 혀를 통해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오감을 동원해야 비로소 진정한 맛을 알 수 있다. 혀끝에서 시작해 보고, 듣고, 맛보고, 씹고, 삼키면서 맛을 기억한다.

음식은 그 지역과 문화를 드러내는 강력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념과 체제, 문화의 간격을 뛰어넘는 매개체다. 또 ‘밥 한 끼’는 그 어떤 약으로도 고치기 힘든 우리의 ‘마음병’을 다스리는 치료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눈길을 끄는 책이 하나 있다.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위영금 지음 / 들녘)이다. 새로운 음식 얘기도 얘기이거니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대부분이 얼어붙은 남북 관계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북한의 지역과 문화·정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50가지 음식을 통해 북한의 다양한 식문화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책은 강냉이죽에서부터 시작해 장마당에 등장한 다양한 음식에 이르기까지 북한 사회의 변화를 엿보게 한다. 각 꼭지에 음식 만드는 방법을 간단히 덧붙여 독자들이 북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센스’도 담았다. 여기에 김소월·백석 등 문인의 시와 함께 따뜻하고 정감 있는 일러스트는 저자의 마음밭에서 자라는 그리움을 보여준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고 문학으로 자기다움을 찾고 싶어 한다는 저자는 1968년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구 장동에서 태어나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8년에 탈북했다. 당시 그에게 음식은 현실이었고, 생존의 문제였다. 굶어 죽지 않으려 두만강을 건넜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여전히 아프지만, 그렇다고 잊을 수도 없는 것이 고향이요 지나온 시간이다.

저자는 2006년에나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그 세월이 녹록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는 ‘밥 한끼’를 위해 일하며 북한학을 공부해 ‘북한학 박사님’까지 됐다. 나름 ‘성공한 삶’이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해소할 수 없는 허기짐이 있다. 기억 속의 맛에 대한 욕구를 100% 충족시키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원래 추억으로 각인된 음식은 어렴풋하면서 선명한 법이다. 그런 까닭에 몸의 배고픔은 쉽게 채울 수 있지만, 마음의 허기짐을 달래기 어렵다. 그런 삶의 간절함, 고향의 그리움, 그곳 음식의 맛과 기억이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이 책에 대해 출판평론가 김성신은 “옳은 삶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그 길을 선택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본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탈북 경험은 탈북 당사자뿐 아니라 한국인 모두에게 더없이 중요한 자산이 된다”며 “특히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는 음식과 인생에 관한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환기하도록 만든다”고 평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가 저마다 살아오면서 만들어 온 맛과 그 기억에 가치를 부여한다. 가족과 함께 먹는 밥이든 혼자 먹는 밥이든 ‘밥’이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그 밥 한 끼가 모두에게 힘이 돼 준다는 사실도 일깨워 준다. 하여 이 책을 읽는 동안 문득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진다. “야, 밥 한번 먹자”라고 말하고 싶어서….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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