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들의 한일전까지...잘 봐, 이게 바로 K판타지다('구미호뎐1938')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5. 1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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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까지 느껴지는 ‘구미호뎐1938’의 거침없는 상상력

[엔터미디어=정덕현] 동생을 위해 옷을 바꿔 입고 무당에게 잡혀간 아이는 뒤주에 갇혀 두려움과 배고픔에 떨다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아이는 한국의 귀신 중 하나인 '새타니'로 탄생한다. 무당에게 영험을 내리는 토착 귀신이다. 그 새타니가 tvN 토일드라마 <구미호뎐1938>에 등장했다. 백두산 호랑이 천무영(류경수)에 의해 깨어나 구미호 이연(이동욱)의 눈을 멀게 만들고 반인반호 이랑(김범)과 토종여우 구신주(황희)를 위기에 몰아넣는 존재로.

<구미호뎐1938>은 삼도천의 수호석을 훔쳐간 홍백탈을 찾아 나선 이연이 1938년으로 가게 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1938년에서 맞닥뜨리게 된 동생 이랑과의 대결 장면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들의 판타지 액션은 우리에게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익숙한 이른바 '만주 웨스턴'의 세계를 펼쳐 놓는다. 배경은 일제강점기의 한국인데 그 위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달리는 열차를 말을 타고 추적하거나 그 열차 안에서 치고받는 서부극의 그것이다.

3년 전 방영됐던 <구미호뎐>의 시즌2라고 볼 수 있는 <구미호뎐1938>은 그 시대배경을 일제강점기로 가져오면서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을 뒤섞었다. 시간을 뛰어넘는 판타지는 기본이고 여기에 만주 웨스턴적인 액션 활극을 더해 넣었다. 등장하는 신화적 존재들도 다채롭게 강화됐다. 구미호와 반인반호, 토종여우, 백두산 호랑이에 류홍주(김소연) 같은 수리부엉이, 클럽 파라다이스에서 노래하는 인어 장여희 같은 존재들이 더해졌다.

매회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설화 속 요괴들도 만만찮다. 삼천갑자 동방삭 같은 18만 세나 살았다고 전해지는 중국 설화에 나오는 존재가 사람의 수명을 빼먹는 요괴로 등장하고, 새타니 같은 토착귀신이 이연과 얽힌 과거사와 더불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어떻게 해도 죽지 않는 삼천갑자 동방삭과 대결할 때 장수거북이와 구지가가 등장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한 마디로 서구의 북구 유럽 신화 등을 모티브로 한 슈퍼히어로들이 있다면, <구미호뎐1938>은 토종 설화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까지 망라한 동양설화의 존재들을 판타지물로 재해석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진 않았지만, 향후 이연이 대결해야 하는 사이토 아키라(임지호)나 가토 류헤이(하도권)가 일본 요괴들이라는 점은 이 판타지물이 한 편의 '요괴들이 벌이는 한일전'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예감케 한다. 물론 이연이 시대를 뛰어넘은 건 홍백탈을 찾아 그가 가져간 삼도천의 수호석을 되찾기 위함이고, 또 거기에는 과거 서로를 지켜주자 약속했던 이연, 류홍주, 천무영(류경수) 같은 산신들의 뒤엉킨 과거사를 풀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시공간으로 들어와 있어 당대의 시대 분위기로서 항일운동의 서사 또한 이 이야기에는 들어있다.

한 마디로 거침없는 K판타지의 상상력이랄까. 마치 과거 <전설의 고향>이 여러 편에 걸쳐 소개했던 설화 속 존재들을 한 작품 안에 녹여내고 재해석하고 있는 느낌인데, 그 상상에 머뭇거림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로 날아간 이연이 겪는 이 모험에는, 설화의 판타지와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과 더해진 복고적 서사는 물론이고 액션 활극에서부터 멜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결들이 포진되어 있다.

자신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할까. <구미호뎐1938>은 이미 <구미호뎐>이 구축해 놓은 캐릭터들 위에 거침없는 상상력의 질주를 보여준다. 마치 이것이 바로 'K판타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고, 서구의 슈퍼히어로들 못지않게 우리에게도 설화 속 인물들의 자산이 충분하다는 걸 드러내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판타지를 실감나게 구현해내는 영상 연출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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