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란 “《나쁜 엄마》는 매달려서라도 꼭 해야했던 작품”
“엄마는 다 나쁘면서도 다 다르게 사랑한다”
(시사저널=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라미란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는 자식을 위해 악착같이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엄마 영순과 뜻밖의 사고로 아이가 돼버린 아들 강호가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가는 감동의 힐링 코미디다. 모든 것이 '리셋'되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찾아나선 모자의 이야기가 유쾌한 웃음 속 코끝 찡한 감동을 선사한다.
극 중 라미란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온 나쁜 엄마 '진영순'을 맡았다. 돼지농장을 운영하며 홀로 아들을 키워온 진영순은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나쁜 엄마가 되기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 달인' 라미란은 마음 아플수록 모질게, 미안하면 더욱 지독해지는 영순의 변화를 그리며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린다. 이도현은 뜻밖의 사고로 아이가 돼버린 검사 아들 '최강호'로 분한다. 라미란의 아들 역할이다.
이렇듯 입덕 포인트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누구나 공감할 법한 '엄마'와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매달려서라도 하고 싶은 역할이었다"고 말한 라미란의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제5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드라마 작품상 수상작 《괴물》을 연출한 심나연 감독과 영화 《극한직업》 《완벽한 타인》 등에서 필력을 인정받은 배세영 작가가 뭉쳐 모성애를 기반으로 한 특별한 힐링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나쁘다'는 드라마 소개 문구처럼 정 많고 순박한 돼지 엄마 영순도 아들 강호에게는 독하고 매정한 '나쁜 엄마'가 돼 악착같이 매달렸다. 물론 젊은 시절 남편 해식(조진웅 분)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한 공허함과 상실감, 그래서 하나뿐인 자식만은 '힘 있고 강한 사람'이 되길 바랐던 영순의 사연은 아주 특별하고 기구했다.
하지만 모두가 금세 영순의 감정에 이입하고, 그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었던 까닭은 누구나 공감할 법한 '엄마'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이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 모든 착한 엄마의 이야기"라는 배세영 작가의 설명처럼 극 중 영순을 통해 어느 누군가는 자신을, 또 다른 누군가는 강호가 돼 각자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나쁘지만 애틋하고 눈물겨운 영순의 '모성애'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유다.
라미란, 이도현을 비롯해 안은진, 유인수, 정웅인, 최무성, 서이숙, 김원해, 장원영, 강말금 등 '믿보배' 군단의 시너지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연출을 맡은 심나연 PD는 드라마 제목에 대해 "엄마들 스스로가 자신을 나쁜 엄마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들이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을 표현하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나쁜 엄마' 영순의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극의 중심을 이끌고 있는 라미란을 제작보고회를 통해 만났다.
출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매달려서라도 꼭 해야만 했던 작품이었다.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극본은 처음이었다. 캐릭터 모두 사랑스럽고 이야기 진행도 빠르다.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6~8권 분량의 극본을 한 번에 읽을 정도로 매력이 있었다."
드라마 제목이 '나쁜 엄마'다.
"영순은 세상 모든 엄마와 다를 수밖에 없다.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평생을 살아왔다. 엄마는 다 처음 아니냐. 나도 엄마지만 세상 모든 엄마는 다르고 나쁜 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영순은 나쁜 엄마라기보다 안쓰러운 엄마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작품도 그렇지만 그동안 《응답하라 1988》 《막돼먹은 영애씨》 등에서 인상적인 엄마 역할을 연기했다. 전작의 엄마들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엄마는 각각 달라서 뭔가 다른 특별한 점을 꼽는 게 좀 우스운 것 같다. 아이들 눈에는 엄마가 나빠 보일 때도 있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만은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엄마인가(라미란은 2002년 신성우 매니저 출신 김진구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다. 라미란의 아들 근우군은 올해 20세로, 사이클 선수로 활약 중이다. 아시아주니어선수권 대회에서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나는 아들에게 좋은 엄마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방생하는 편이고 자율에 맡기는 편이라서 그런 것 같다(웃음)."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 시대 엄마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충분히 잘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오히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이들에게는 더 안 좋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 정말 어렵다. 저도 엄마가 됐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좋은 엄마'라 하면 그게 좋은 엄마지 않겠나. 세상의 모든 엄마가 다 다르다. 누구나 엄마는 처음이지 않나. 저도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엄마는 다 나쁘면서 또 다 다르게 사랑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아들로 출연한 이도현과의 모자 케미는 어땠나.
"비록 아들이라고 불렀지만 최고의 파트너였다. 이도현처럼 한 작품에서 오랜 시간 연기를 한 배우는 처음이다. 그 시간 동안 호흡이 너무 좋았다. 사소한 디테일까지 완벽한 케미였다."
현장에서 라미란을 '누나'라고 불렀다고 한 이도현은 "선배님은 경력이 많이 있으셔서 그런지 감정 컨트롤이 잘되시더라. 저는 잘 안돼서 눈물도 흘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선배님이 잡아주셨다. 케미를 점수로 매기면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화답했다.
연기파 배우가 대거 출연한다. 앙상블 연기를 보는 재미도 관전 포인트다.
"미주 엄마로 나오는 배우 강말금은 정말 내가 말릴 정도로 몰입하더라. 심지어 서이숙 선배님보다 나이 들어 보이게 하고 출연한다. 전작 《신성한, 이혼》에서는 아가씨로 나왔다. 그래서 못 찾을 수 있다. 모든 배우가 그렇지만 연기를 너무 잘한다."
관전 포인트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번 보면 멈출 수 없다!"
《나쁜 엄마》 '눈물 버튼' 명장면 넷
제작발표회에서 서로가 '눈물 버튼'이었다고 밝힌 배우들의 말처럼, 회를 거듭할수록 영순과 강호의 이야기에 빠져든 시청자들 또한 그들과 함께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안방을 뜨겁게 울린 명장면 넷을 짚어봤다.
#이도현, 《나쁜 엄마》 라미란 향해 억눌린 감정 폭발(1회)
강호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고, 그의 죽음은 영순을 나쁜 엄마로 만들었다. 하나뿐인 자식만큼은 가난하고 무식해서 당하고 사는 일 없도록, 훌륭한 법관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하며 어린 아들을 꼼짝 못 하게 옭아맸다. 강호는 학창 시절 동안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꿈도 못 꿨고, 심지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맘 편히 자지 못했다. 공부에 대한 부담과 엄마 영순의 압박에서 유일하게 숨을 틔우게 하는 존재는 미주(안은진)뿐이었다. 그런 미주가 눈앞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자 강호는 평생 준비한 수능 시험도 포기했다. 이를 안 영순은 "왜 다른 사람 때문에 네 인생을 망쳐"라며 매몰차게 내몰았다. 그 말에 강호도 처음으로 억눌린 감정을 터뜨렸다.
# 라미란과 천륜 끊기로 한 이도현(2회)
영순의 바람대로 검사가 된 강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그리고 그는 더 힘 있고 강해지기 위해 우벽그룹 송회장(최무성)의 양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약혼녀 하영(홍비라)과 함께 고향 조우리 마을을 찾았고, 영순은 아무것도 모른 채 두 사람을 맞이했다. 모처럼 만의 만남에 반가움도 잠시 강호는 입양 동의서를 내밀었다. 강호는 부모와 자식 간 천륜을 끊겠다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고, 결국 영순은 그런 아들의 모습에 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찍었다. 그는 도장이 찍힌 입양 동의서만 들고 매정하게 집을 나섰다. 그러자 영순이 쫓아가 밥이라도 한술 뜨고 가라며 붙잡았지만, 강호는 "어머니 앞에서 단 한 번도 편하게 먹어본 적 없는 그 밥 말씀하시는 거예요?"라며 되레 화를 냈다. 자신은 창피해도 이건 좋은 것이라며 내민 패물 상자도, 서울 올라가는 길에 먹으라며 바리바리 싼 녹두전도, 강호는 영순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엄마의 마음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차마 붙잡지도 편히 보내지도 못하는 영순 혼자만의 애절한 이별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배부르면 잠 와. 잠 오면 공부 못 해"(3회)
그렇게 떠났던 강호에게 뜻밖의 사고가 닥쳤다. 그의 목숨을 노린 태수(정웅인)가 딸과 함께 벌인 충격적인 자작극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더 이상 사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전신마비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억과 지능이 일곱 살 수준에 멈춰버리게 된 것. 영순은 이렇게 살아준 것만으로 고맙다고 눈물을 흘렸지만,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무슨 이유인지 강호가 몇 날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영순은 화를 내고 다그치며 억지로 음식을 먹이려 했다. 그제야 엄마의 화난 얼굴을 본 강호가 꾹 다물었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배부르면 잠 와. 잠 오면 공부 못 해"라는 말을 연거푸 되뇌었다. 바로 영순이 강호에게 수도 없이 반복했던 말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돌아온 그 말은 영순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 라미란, 자책과 후회의 오열(4회)
영순은 아픈 강호를 대신해 그의 집과 검사실을 방문했다. 조우리 마을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며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온 짐들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자랑스럽기만 했던 검사 아들의 이면을 마주하게 된 영순은 혼란스러웠다. 강호가 대가성 뇌물을 받고 부정부패를 저질러온 '악질 비리 검사'라며, 과거의 자신처럼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강호에게 왜 그렇게 나쁘게 살았느냐고 탓하며, 그 죄로 인해 지금 벌을 받는 것이라고 외쳤다. 이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널 이렇게 키운 거야. 돈 있고 힘 있는 사람 만들려다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을 만들었다"며 자책과 후회에 제 가슴을 내리치는 영순의 오열이 강호는 물론 시청자들까지 눈물 쏟게 했다. 하지만 강호는 자신이 검사였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하늘이 주신 '기회'이니 행복하고 기뻐하자고 약속했던 두 사람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먹먹한 울림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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