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이 돌아왔다… 데뷔 55주년 콘서트 조용필

이강은 2023. 5. 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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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올해 55, 아직 괜찮습니다” 능청
기대 저버리지 않은 최고의 감동 무대 선사
13일 ‘2023 조용필 & 위대한탄생 콘서트’가 열린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어둠이 완전히 내려 앉은 저녁 7시47분쯤, 초대형 무대 전광판의 화려한 영상과 밴드 위대한 탄생의 강렬한 사운드 속에 데뷔 55주년을 맞는 ‘가왕(歌王)’ 조용필(73)이 등장하자 약 3만5000명 관객이 들어찬 공연장은 엄청난 환호로 떠나갈 듯했다. 

5년 만에 다시 주경기장 무대에 선 조용필이 첫 곡 ‘미지의 세계’를 부르는 동안 귀를 찢을 정도의 폭죽 소리와 함께 화려한 불꽃쇼와 레이저쇼가 펼쳐졌고 관객들은 조용필이 무료로 나눠준 야광봉을 흔들며 함성과 떼창으로 화답했다. 가왕의 데뷔 55주년과 주경기장 귀환을 환영하는 의식 같았다. 조용필은 이어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리듬의 ‘그대여’와 떼창을 유도한 ‘못찾겠다 꾀꼬리’를 부른 뒤 열기가 달아오르자 잠깐 쉼표를 찍었다.

한 손을 흔들며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한 그는 행복한 기분을 발산했다. “평생을 여러분과 함께 해왔습니다. 제 나이가 올해 몇인 줄 아시죠? (오른손을 두 번 쥐었다 펴면서) ‘오십 다섯’입니다. 아직 괜찮습니다”라며 능청도 떨었다. 데뷔 55주년을 자기 나이에 비유한 것이다. 하늘도 이날 만큼은 비를 뿌리지 않으며 가왕의 기념비적인 축제를 도왔다. “이 무대 설 때 비가 많이 왔었는데 오늘은 괜찮네요. 이따 조금 비가 올 줄도 모른다고 연락왔는데 괜찮죠? 자, 오늘 저하고 노래하고 춤도 추고 맘껏 즐깁시다. 오케이?”

조용필의 주경기장 단독 콘서트는 일곱 번째(횟수로는 8회)인데 첫 무대였던 2003년 ‘35주년 기념 공연’과 2005년 전국투어 ‘필 & 피스’ 서울 공연, 2018년 데뷔 50주년 콘서트에 많은 비가 내렸다. 이 때문에 ‘비를 부르는 남자’라 불리기도 했지만 조용필은 날씨와 상관없이 항상 최고의 무대를 선사했다. 모든 가수에게 꿈의 무대로 꼽히는 주경기장에서 조용필이 유일하게 여덟 차례나 공연하고 모두 전석 매진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도 조용필은 약간 쌀쌀한 바람에 콧물을 흘리면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2시간 남짓 앙코르 곡(‘킬리만자로의 표범’, ‘바운스’)합쳐 스물 다섯 곡을 녹슬지 않은 가창력으로 들려줬다. 그는 공연 중에 말을 거의 하지 않고 게스트도 두지 않아 사실상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젊은 가수도 하기 힘든 이런 무대를 계속 할 만큼 평소 자기 관리가 얼마나 철저한지 짐작할 수 있다.    
1975년 발표한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지난달 발표한 최신곡 ‘필링 오브 유(Feeling Of You)’까지, 조용필은 다양한 색깔의 장르가 담긴 노래 인생을 압축하고 팬들의 변함없는 애정에 호응하는 곡들로 55주년 무대를 꽉 채웠다. 그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하도 안 하니까 항의가 오더라”, “‘잊혀진 사랑’은 사실 여러분들의 곡이다. 저는 TV에서 한 번도 그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웃기도 했다.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에서 애절하게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를 부른 순간 객석에선 “오빠”를 외치는 소리가, 다음 곡 ‘비련’에서 그 유명한 첫 소절 ‘기도하는∼’이 나오는 순간 “꺄∼”라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여행을 떠나요’에선 다같이 흥겨운 여행을 떠나듯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신나게 뛰며 따라 불렀다. 

특히, 이번 공연은 반타원형의 거대한 LED 전광판을 활용한 영상미가 돋보였다. 곡마다의 노랫말에 어울리는 영상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이야기를 전하며 관객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컨대 조용필이 지난해 내놓은 ‘세렝게티처럼’을 부를 때 광활한 초원과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 펼쳐져 객석의 탄성을 자아냈다.

‘바람의 노래’ 배경 영상도 명장면이었다. 영상 속 나무는 처음엔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였는데 노래가 끝날 즈음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로 변했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아야 되.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란 가사가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조용필이 1988년 서울올림픽 전야제에서 처음 이 무대에 섰다며 소개한 ‘서울 서울 서울’을 부를 때는 당시 올림픽 개막 영상과 서울의 풍경 등이 나와 중장년 관객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고추잠자리’ 노래가 나올 땐 관객들이 든 야광봉 색깔이 새빨갛게 변하는 등 K팝 아이돌 콘서트처럼 중앙제어장치로 응원봉의 색깔을 다양하게 조정해 공연장을 물들인 광경도 일품이었다. ‘친구여’, ‘단발머리’, ‘꿈’, ‘모나리자’ 등 명곡이 줄 이은 공연은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면서 가슴도 촉촉히 적셔준 감동적인 무대로 손색이 없었다.     

가왕은 앙코르 곡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바운스(Bounce)’를 마친 뒤 관객을 향해 “감사합니다”를 연달아 외치며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읊은 내레이션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가 귓가에 맴돌았다. 2시간 남짓 공연 동안 꿈 같은 여행을 다녀온 팬들의 얼굴엔 행복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가왕의 명성에 걸맞게 이날 주경기장 인근은 이른 오후부터 인파로 가득 찼다. ‘오빠’, ‘형님’ 팻말을 든 중·장년 관객을 중심으로 노인·젊은 세대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오빠부대’나 국내 팬덤의 원조다운 조용필 팬들의 분위기도 뜨거웠다.
‘2023 조용필 & 위대한탄생’ 콘서트 올림픽주경기장 공연 모습. YPC, 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특히 3대 팬클럽인 ‘이터널리’(1997년 결성)와 ‘미지의 세계’(1999년), ‘위대한 탄생’(2001년)은 티켓 부스 주변에 자리를 마련하고 콘서트 안내 등을 도왔다. 이들은 무대 정면의 객석 2층과 3층 사이에 ‘55 느낌이 달라...55 낯설은 세상이..55 너 혼자 몰라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 봐도 조용필!!(이터널리), ‘불어오는 바람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굳이 묻지 않아도 이름 만으로 존재의 의미가 되는 그, 우리 곁에 조용필’(위대한 탄생), ‘대한민국 No.1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 꺼지지 않는 영원한 신화, 조용필!!’(미지의 세계)이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10대 초반이던 1979년 TV에서 조용필을 접하고 팬이 됐다는 ‘이터널리’ 남상옥(55) 회장은 연합뉴스에 “조용필이라는 뮤지션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분이고, 새로운 음악을 위해 대중에게 끌려가지 않고 오히려 대중을 이끌어나가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팬들이 쫓아가기에 너무 힘든 음악이지만, 그런데도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세련된 음악을 만든다”고 덧붙였다. 

오는 27일 대구 스타디움 콘서트에서 2차 콘서트가 열린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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