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외교적 중립’ 교황청에 “중재는 필요치 않아···우크라 편에 서 달라”

선명수 기자 2023. 5. 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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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러 ‘중재자’ 역할 나선 교황청에
“피해자와 침략자 사이엔 중재 필요치 않아”
교황청에 우크라 편에 서줄 것을 촉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이 13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공개로 회담을 진행했다. 바티칸 제공/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줄 것을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외교적 중립’을 오랜 전통으로 삼고 있는 교황청을 향해 피해자와 침략자 사이의 ‘중재’는 필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접견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교황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약 40분간 진행된 회담 이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저지르는 범죄를 규탄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피해자와 침략자는 절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의 평화 공식이 정의로운 평화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인 유일한 알고리즘이라는 점도 이야기했다”면서 “(교황청이) 우리의 평화 공식 실행에 동참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러시아군의 철수와 우크라이나의 영토 회복 등을 전제로 한 10개 평화 공식을 제시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그간 러시아의 영토 반환이 없는 평화협상에 대해선 단호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교황과 만난 뒤 이탈리아 방송에 출연해 “존경하는 교황님께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는 푸틴과 함께 중재를 받을 수 없다”면서 “우크라이나와 우리 영토를 점령한 침략자 사이엔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맡겠다는 교황청에 중재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외교적 중립을 전통으로 삼아온 교황청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에는 어느 한 쪽의 편을 드는 언급을 대체로 자제해 왔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8월부터 러시아를 강하게 비판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내놓기도 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쟁 종식을 위한 ‘비밀 평화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관련 대화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교황청 관계자는 이번 만남과 ‘평화 임무’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성명을 통해 이날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인도주의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며 “교황은 가장 연약하고 무고한 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인류의 몸짓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러시아로 납치된 우크라이나 아동들에 대한 송환에 교황청이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교황 접견에 앞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등과 만났다. 멜로니 총리는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는 자신 뿐 아니라 나머지 유럽을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안한 10개 평화공식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탈리아 방문 다음날인 14일에는 곧바로 독일 베를린으로 향했다. 그의 방문에 앞서 독일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르트 전차 30대와 마더 장갑차 20대 등 모두 27억유로 규모의 추가적인 무기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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