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시설 지진 감시망 더 '촘촘히'..."1초만에 감지 후 3초 내 경보"

천안, 기장=박정연 기자 2023. 5. 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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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지진관측망 확충에 손 맞잡은 기상청과 원안위
12일 한국기상산업기술원 검정원이 충북 천안에 소재한 한국기상산업기술원 지진계검정센터에서 지진관측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기상청,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12일 찾은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에 걸쳐 드넓게 조성된 고리원자력발전소의 군데군데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너무 오래돼 입구를 막아둔 우물처럼 보이는 작은 시설들이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이 시설은 기상청이 추진 중인 국가지진관측망 구축 계획에 포함될 지진관측장비다.

고리원자력발전소 내부에 있는 지진관측장비 주제어실에는 직원 4~5명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광훈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전 본부장은 "원전에서 지진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제어실에는 빨간색과 주황색의 경보 사이렌이 설치돼 있다. 지진 발생 상황을 가정하자 경보기에선 '삐용삐용' 하는 지진 경보음이 울렸다. 지진이 발생하고 경보가 울리기까지는 단 4초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 본부장은 "지진이 발생하고 1초만에 진동을 감지하고 3초 이내에 경보가 발령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울산과 포항에서 잇달아 지진이 일어나고 이 지역 인근에 지진이 발생해 지표가 파열된 흔적인 활성단층이 활성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한국 또한 '지진안전지대'란 방심은 금물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기상청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진안전 인프라 확대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

지난해 맺어진 협약을 통해 기상청이 추진 중인 국가지진관측망 구축 사업에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관리하는 장비 220개가 관측망에 포함됐다. 국가지진관측망 구축 사업에 포함되는 전체 지진관측장비 630개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독립적인 원전부지 지진감시를 위한 고리, 월성, 한빛, 한울, 방폐장, 하나로 6개 원전 부지 내 지진관측소가 거점 역할을 한다. 경주일원 및 고리‧월성 부지 반경 40km 이내 150개소와 한빛‧한울 부지 반경 40km 이내 각 35개 지진관측소가 구축됐다. 

이 협약을 통해 기상청과 원안위는 원자력이용시설 내 지진 관리 시스템 점검에도 상호 협력한다. 시설 내부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탐지하고 경보를 내리는 원전지진 자동정지시스템(ASTS)의 안전성을 주기적으로 확인한다. 원안위 관계자는 "이 시스템을 활용한 신속한 대응을 통해 지진 발생시 즉각 원자로 작동을 중단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2일 부산 고리원전에서 진행된 지진관측장비 합동현장점검에서 유희동 기상청장과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장비 점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기상청,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이번 협약의 핵심 중 하나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이 관리하는 지진관측장비의 안전성과 성능을 기상청이 검정하는 것이다. 지진안전망 확대를 위해 새롭게 시설을 설치할 뿐만 아니라 기존 시설을 활용하기 위해 꼼꼼한 검정이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검정 작업을 실시하는 기상청 산하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의 이수영 관측지원본부 지진계검정센터 센터장은 "가속도지진센서, 속도지진센서, 지진기록계 3개 지진관측장비를 대상으로 한국기상산업기술원 검정실이 실내점검과 실외점검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검정을 마친 장비는 양질의 지진탐지 기능이 보장된다. 이 센터장은 “지진관측장비에 대해 검정을 실시하면 통상 6~8%는 불합격 판정을 받는다”며 “지진을 적기에 예측할 수 있는 장비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진관측장비 검정은 크게 성능검정, 구조검정, 기능검정으로 나뉜다. 성능검정에서는 장비의 감도, 주파수 응답기능 그리고 입력신호를 제대로 출력하는지 확인하는 선형성을 살핀다. 구조검정은 장비의 요건을 살핀다. 수평 표시기와 조절기의 부착 여부, 센서규격의 표시 여부, 진북방향의 표시 여부, 검증코일의 유무 등이 포함된다. 

기능검정은 명목감도(목표로 삼는 감도)와 측정감도(실제 측정한 감도)의 편차를 확인한다. 지진기록계의 경우 디지털변환 기능의 정도와 연속 관측자료의 누락 여부를 점검한다. 성능검정에서는 감도나 입출력반응 및 각종 오차를 확인한다.

한국기상사업기술원은 2021년 11월 이후 원자력시설 등 국내 시설에 도입된 장비의 경우 이러한 검정 작업이 실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시기 이후 설치된 장비는 기기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새롭게 검정 의뢰를 받은 장비 외에도 기존에 사용되던 지진 관측 장비에 대한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며 "2025년 12월까지는 전국에서 사용되는 모든 장비에 대한 검정과 인증 작업을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과 원안위의 이번 협약은 원자력이용시설의 지진 및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데도 집중한다. 지진·지진해일 관측자료 공유 및 현장경보 활용을 위해 협력하고 단층연구를 위한 기술교류 및 연구성과를 공유한다. 이 밖에도 국내외 방사능 유출사고 시 신속한 대응을 위한 협력이 이뤄진다.

12일 부산 기장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기상청과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들이 합동점검 실시 전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기상청,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유국희 원안위원장은 이날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원안위-기상청 원전 지진 관측망 합동 현장점검 간담회에서 “원자력시설은 지진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등 기상과 밀접하게 관련한 부분이 많다”며 “예측할 수 있는 지진에 맞서서 원자력발전소가 안전을 지켜낼 수 있는 조치들을 많이 해왔다”고 말했다. 유 청장에 따르면 기상청이 관여한 설비는 지진기반가속도 0.3g(규모 7.0)의 지진 충격에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설비뿐만 아니라 경보시스템 품질 유지에도 양 기관은 긴밀하게 협력할 방침이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기상청은 국가 주요 시설에 대한 조기경보와 현장경보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시설 중 하나인 원전의 안전을 위해 신속하게 지진경보를 전달하고 지진 발생 가능성에 관한 연구와 조사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기상청은 앞서 지난달 ‘국가 지진관측망 확충계획’을 통해 발표하며 지진 발생 시 큰 피해가 우려되는 인구 밀집 지역과 원자력 이용시설지역, 주요 단층 지역을 중심으로 2027년까지 총 329개소의 지진관측망이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기상청의 계획대로라면 관측 조밀도도 약 16㎞에서 7㎞로 2배 이상 촘촘해져 지진탐지 시간이 3.4초에서 1.4초로 2초 가량 줄어든다. 지진탐지 시간 단축으로 지진 대피 가능 시간인 ‘골든타임’이 추가 확보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진 발생 시 근거리 대피가 가능하면 인명피해의 80%를 줄일 수 있다. 현재는 지진 발생 위치로부터 40km 이상 떨어진 지역부터 ‘근거리 대피’가 가능하지만 지진탐지 시간이 2초 단축되면 36km 이상 떨어진 지역부터 ‘근거리 대피’가 가능해진다. 지진탐지 시간 단축으로 지진 발생 시 근거리 대피가 가능한 지역이 더 넓어져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천안, 기장=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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