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출신 ‘고음악 거장’ 헤레베허…“지휘자는 인간 본성 이해해야”
‘고음악’은 작곡가 생전 시대에 사용하던 악기를 당대 스타일로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이다. 고음악의 눈으로 보면 현대 클래식도 ‘모던 음악’이다. 현대 클래식은 대극장 공연에 맞춰 안정적인 음정으로 큰 소리를 내도록 개량된 악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현대 바이올린 현은 주로 나일론 심에 금속을 코팅해 만들지만 과거에는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들었다. 소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 고음악에선 당대 음악의 소리와 정서를 재현한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고음악 거장 지휘자’로 불리는 필리프 헤레베허(76)가 자신의 악단인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을 찾는다. 오는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20일 부천아트센터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들려준다. 헤레베허는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관객에게 희망과 이상향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대 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음악을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죠. 저와 동료들의 목표는 ‘구시대적이지 않은 것’이었어요. 하지만 이는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일 뿐이고 목표는 명료성이죠. 명료성에 집중하는 것이 고음악에서는 가장 중요해요.”
헤레베허의 내한은 2019년 통영국제음악제 이후 4년 만이다. 헤레베허는 “한국에 자주 갈 수는 없으니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교향곡 중 최고의 작품을 엮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주피터’와 ‘영웅’은 계몽주의 정신과 관련 있고, 긍정과 희망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고난과 시련을 딛고 얻는 ‘인간의 승리’를 담아냈다고 할까요. 어떤 면에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도 비슷한 것 같군요.”
헤레베허는 1991년 고음악 전문 악단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통상 중세부터 바로크 시대까지의 음악을 고음악이라 부르지만 이 악단은 18~19세기 모차르트나 베토벤, 20세기 말러나 쇤베르크의 음악까지 연주한다. “우리가 걸어온 여정은 슈만부터 말러까지 중요한 음악적 도전들이었죠. 지난해 창단 30주년을 맞아 브루노 발터가 1911년 독일 뮌헨에서 초연을 지휘했을 당시 색채로 말러 교향곡 ‘대지의 노래’를 연주했어요. 우리가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을 연주하면 관객은 이 음악들이 중세와 20세기 사이 다성음악의 교각으로서 고대 음악과 얼마나 깊이 연결됐는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벨기에 출신인 헤레베허는 정신과 의사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의사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의대에 진학했지만 지휘와 작곡을 공부했고 1980년 고음악 앙상블 ‘콜레키움 보칼레 겐트’를 창단하기도 했다. 정신과 의사 생활에 흥미를 잃자 전업 음악가가 됐다.
헤레베허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지휘를 할 수 있다”며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음악가들은 보통 매우 개방적이고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풍부하죠. 하지만 음악원과 달리 대학에서는 사고하는 것을 배워요. 마치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비슷해요. 지휘자는 무엇보다도 분석적인 사고력이 있어야 하죠.”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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