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토론대회 우승자 서보현 "토론은 생존 도구였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저처럼 내성적인 사람에게 토론은 존재 이유이자, 생존 도구였습니다."
세계토론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한 서보현(29) 씨의 말이다. 토론 기술을 담은 책 '디베이터'(문학동네) 출간을 기념해 고국을 찾은 그를 최근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서 작가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는 2013년 세계학생토론대회(WSDC), 2016년 세계대학생토론대회(WUDC)에서 우승했고, 하버드대에 진학해 정치 이론을 전공,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중국 칭화대에서 공공정책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하버드대 로스쿨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하버드대에서 토론팀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이 모든 성취에 토론이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토론하다 보면 역사,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할 수밖에 없는 데다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항상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토론이 공부하는 데 제일 도움이 됐어요. 에세이 쓰는 데도 토론 기술이 적용됐고요. 자기 생각을 토대로 논쟁하거나 발표하는 데 엄청나게 도움이 됐습니다. 생각하는 방식을 비롯해 모든 과목을 공부하는 데 토론의 기술이 적용됐어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제 삶에 많은 힘이 됐습니다."
서 작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내성적인 성향인 데다가 언어장벽까지 겹치니 처음에는 '예스' '오케이'라는 말만 했다. 초4 때 밤샘 공부를 하고, 주말에도 공부하다 보니 말이 유창해지고, 교과목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은 개선되지 않았다. 친구들과 논쟁적인 이야기는 피했다. "적당히 지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데 점점 익숙해졌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 때 토론팀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토론에서 논쟁은 불가피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야 했다. 그는 그간 꼭꼭 숨겨왔던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억눌러왔던 감정을 해소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다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제 생각을 숨기면 진짜 관계로 발전하긴 어렵게 되죠. 그렇게 사는 게 외롭고, 힘들기도 했고요. 토론을 통해서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 이후에 토론은 제 레종 데트르(존재 이유)가 됐죠."
토론은 대학에 가는 데도 도움이 됐다. 대부분 호주 대학을 지원했고, 미국대학은 하버드만 지원했는데 "덜커덕 하버드대에 합격했다"고 했다. 교과 성적뿐 아니라 토론 경력 등이 합격에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버드대 합격생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를 보니까 고교 때 가장 많이 한 활동이 '토론'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다음이 학교 자치활동이었어요. 학교에 들어가 보니 토론이 정말 중요했어요. 고교 때까지는 '정답'의 세계였죠. 하지만 대학부터는 '자신의 의견'이 중요해요. 입학사정관들도 그런 점을 보는 것 같아요. 하버드대에 합격하려면 성적도 성적이지만 자신만의 이론(theory)이 있어야 해요."
토론하면서 여러 성공을 맛봤지만, 그가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다. 감정에 빠져 논리가 흐트러지기 일쑤였고, 탁월한 토론자를 만나 좌절에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생각과 논리를 가다듬으며 조금씩 수정해 나갔다. 좋은 책을 읽고, 선생님과 선배의 조언을 얻었다. 그가 꼽은 성공의 미덕은 이를 토대로 한 '연습'이었다.
"초등 때는 논쟁의 구조를 짜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중고등 때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하죠. 초등학생의 논쟁이 웅변과 같다면 중고등 때는 상대의 말을 잘 듣고, 분석해서 대응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죠. 대학 때는 어떤 포인트를 발전시키고, 어떤 포인트는 버리느냐를 판단해야 합니다. 각각의 과정을 잘 마스터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토론을 잘하기 위한 비결은 없습니다. 토론을 잘하려면 좋은 사람과 책을 만나 꾸준하게 연습하는 게 필요합니다. 시간을 내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이죠."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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