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선’ 켜켜이 손목 묶인 채 유골로… 64인, 봉안식 치렀지만

고경태 2023. 5. 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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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6일부터 4월21일까지 충남 아산시 성재산과 새지기에서 발굴된 한국전쟁기 부역 혐의 희생자 64구의 유해가 13일 오전 세종시 전동면 세종 추모의 집에 봉안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와 한국전쟁아산유족회,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이에 앞서 오전 8시반 성재산 교통호 인근에서 유택을 떠나는 의식을 시작으로 오전 10시 아산시청 광장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아산지역 발굴 유해 봉안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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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민간인 유해들, 세종 추모의 집 봉안
성재산 10~40대 추정 62구, 새지기 엄마와 아이 추정 2구
충남 아산 성재산 옛 방공호에서 발굴된 한국전쟁기 부역혐의 희생자들의 유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유세차 계묘 3월24일, 서기 2023년 5월13일 저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아산유족회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끌려가신 님들을 찾아 72년을 헤매인 끝에, 배방 성재산 기슭 교통호 어둠과 염치 새지기 비탈 암흑에서 님들을 찾아 모시고, 오늘 세종 추모의 집으로 향합니다. 임들의 두 손을 묶은 통한의 삐삐선을 풀고 뼈에 박힌 원한의 총탄을 제거했으나, 아직 님들의 존함과 연세, 피붙이들과 살던 곳을 밝히지 못하고, 또다시 언제일지 모를 훗날을 기약하며 님들을 임시 안치하려니 너무나 송구스럽고 한스럽기만 합니다.”(제문 중에서)

지난 3월6일부터 4월21일까지 충남 아산시 성재산과 새지기에서 발굴된 한국전쟁기 부역 혐의 희생자 64구의 유해가 13일 오전 세종시 전동면 세종 추모의 집에 봉안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와 한국전쟁아산유족회,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이에 앞서 오전 8시반 성재산 교통호 인근에서 유택을 떠나는 의식을 시작으로 오전 10시 아산시청 광장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아산지역 발굴 유해 봉안식을 가졌다. 봉안식은 식전 살풀이공연과 제례의식, 경과보고, 유족 인사,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13일 오전 아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아산지역 발굴유해 봉안식에서 유족과 시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아산/고경태 기자

이번에 안장된 유해는 배방읍 공수리 산110 성재산 기슭 교통호에서 양팔에 군용전화선이 묶인 채 발굴된 62구와 염치읍 백암리 96-4 새지기2지점에서 서로 붙은 채 발굴된 2구다. 성재산 교통호에서 발굴된 유해들이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건장한 남성들인 반면, 새지기2지점의 2구는 엄마와 아이로 추정됐다.

발굴단을 이끈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경과보고에서 “이번처럼 온전한 형태로 유해가 발굴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가족과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유족 10명의 유전자를 샘플로 채취한 상태지만 나머지 유족과 함께 유해의 유전자 검사를 위한 국가의 대책 마련과 발굴지점 보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일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충남유족연합회장은 인사말에서 “유족2세로서 전화선에 팔이 묶여 발굴된 유해를 보며 피가 끓고 살이 떨렸다. 학살 주체인 국가가 한국전쟁 희생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맹억호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아산유족회장은 “저희 유족들은 대부분 허리가 굽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가와 아산시가 남은 유해발굴과 발굴된 유해 신원확인에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3월28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 110 성재산 기슭 교통호에서 발굴된 유해. 5월13일 오전 아산시청에서 안장식을 가진 뒤 세종 추모의 집에 임시 안장되었다. 진실화해위 제공

아산시청에서 봉안식을 마친 뒤, 참여자들은 집단살해 가해책임을 지닌 온양경찰서가 있었던 아산시 시장길에서 노제를 지낸 뒤 세종 추모의 집으로 떠났다. 유해는 세종 추모의 집에 임시 안치된 뒤, 2025년 대전시 동구 낭월동(옛 산내 골령골)에 만들어질 ’진실의 숲’이라는 국가단위 위령시설에 영구 안장될 예정이다.

2009년 5월 1기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를 보면, 성재산에서 발굴된 유해들은 1950년 9월 말부터 1951년 1월 초까지 인민군 점령 시기에 부역했다는 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및 향토방위대, 태극동맹)에 의해 집단살해된 아산 주민 중 일부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최소 77명 이상이 적법한 절차 없이 아산 지역에서 살해되었다고 결론 내리고 국가에 사과를 권고한 바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이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2020년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에도 90여명의 아산 지역 주민이 진실규명을 신청해 조사 개시가 결정된 상태다.

아산 지역 일대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800구 이상의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발굴은 아산 부역 혐의 희생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첫 발굴로, 진실화해위가 2022년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지로 전국에서 선정한 7개 지점 중 두 곳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성재산 교통호 북쪽(신도리코 건물 방향) 150m 구간도 토지사용허가를 마치고 발굴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2018년 2월 말부터 4월 초까지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아산시와 함께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에서 유해 208구를 수습해 안장한 바 있다.

13일 오전 아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아산지역 발굴유해 봉안식에서 맹억호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아산유족회장(무릎 꿇은 이)이 초헌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최만정 남북상생통일충남연대 상임대표가 제문을 읽고 있다.
13일 오전 아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아산지역 발굴유해 봉안식이 끝난 뒤 유족들이 아산시 시장길 옛 온양경찰서 자리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1기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과 온양경찰은 가해책임자로 결론난 바 있다. 아산/고경태 기자
13일 오전 8시반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 110 성재산 기슭 교통호 아래 컨테이너에 보관돼 있던 64구의 유해를 유족과 시민들이 리무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아산/고경태 기자

아산/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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