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투약하면 실명 위기 벗어나는데…‘한쪽눈당 5억’ 초고가 치료비에 눈물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김동환 2023. 5. 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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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깜깜한’ 희귀 망막질환자 현실
유전자성 변이 일종 ‘망막색소변성증’
치료 적기 놓치면 실명으로 악화 위험
신약 ‘럭스터나’ 건보 적용안돼 ‘비급여’
의학계 “치료효과 좋아… 조속 등재돼야”

그의 시야엔 늘 검은 테두리가 존재한다. 깜깜한 터널에서 밝은 출구를 바라볼 때처럼 그렇다는데, 실명 위협에 시달려 왔다. 시각회로에 영향을 끼치는 ‘RPE65’ 유전자 변이에 따른 유전성 망막변성(IRD) 중 하나인 망막색소변성증을 앓던 당시 박선경(32)씨의 이야기다.

스위스의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의 유전자 치료제 ‘럭스터나’(Luxturna·성분명 보레티진 네파보벡) 투여로 그는 2년 전 왼쪽 시력을 되찾았지만, 같은 질환을 앓던 동생은 안타깝게도 이미 상태가 악화해 실명했다.
의학계에 따르면 RPE65 유전자에 돌연변이 발생 시 망막세포 파괴로 시야가 좁아지다가 실명에 이른다. 어릴 때 증상이 나타나지만 야맹증 등으로 여겨 치료 적기를 놓치기 일쑤라고 한다.

럭스터나는 황반 수술 경험이 있는 망막 외과의가 유리체(琉璃體) 절제술 후 안구 하나당 단회 투여해야 한다. 각 눈에 최소한 6일 이상 간격을 두고 0.3㎖를 투여한다.

이제는 방 천장에 붙은 ‘야광별’ 스티커를 보며 삶의 행복을 되찾은 박씨의 이야기를 본인 동의를 받고 1인칭으로 재구성했다.

◆처음 본 밤하늘 구름에 울었다

저는 두 돌쯤 약간의 사시, 동생은 생후 8개월쯤 눈을 잘 못 맞추고 불빛을 많이 쳐다보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자라면서 시야는 점점 좁아졌고 어두워졌으며 앞이 안 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열살이 되던 해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습니다.

2020년 유전자 검사에서 그나마 RPE65 유전자 변이가 원인임을 알았지만, 우리나라에는 치료제가 없어서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같은 해 12월 병원에서 치료제 임상시험에 참여해 보자는 말을 들었지만, 희망을 잃어서인지 기대는 크지 않았습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2021년 7월에도 떨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 걸린 수술은 영하 65도에서 보관하던 치료제를 녹이고 유리체를 걷어낸 뒤 투여 순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병의 진행으로 망막이 너무 얇아 위험이 컸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수술 후 첫 번째 밤 산책에서 구름을 인생 처음으로 마주하고, 자기 전에 조용히 혼자 울었습니다. 집에는 서른살 넘어서야 처음 본 야광별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유치하다 하겠지만 제겐 새로운 기쁨입니다.

제가 투여한 신약은 망막세포가 충분히 살아 있어야 효과를 본다는데, 동생은 이미 그 시기가 지나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저라도 치료해서 다행이라는 동생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실명 가능성이 커 환자들은 걱정 속에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치료 약이 있는데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현실은 잔인합니다. 실명 공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끔찍한 감정입니다. 다른 환자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 용기 내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감사합니다.
‘RPE65’ 유전자 변이로 인해 유전성 망막변성(IRD) 중 하나인 망막색소변성증을 앓다가 2021년 스위스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의 유전자 치료제 ‘럭스터나’ 임상시험 투여로 왼쪽 시력을 되찾은 박선경(32)씨의 방에 붙은 야광별 스티커. 박선경씨 제공
◆‘억’ 소리 나는 신약이지만 비급여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희귀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전해진 박씨의 메시지는 울림이 컸지만, 그와 같은 사례를 앞으로도 기대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2021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가 난 럭스터나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회 투약 가격이 한눈에만 5억원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3월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열었지만 한국노바티스와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비급여 결정을 내렸다.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나타내는 사후관리 기준을 둘러싸고 제약사와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노바티스는 럭스터나 급여 등재를 재신청했다. 국내의 럭스터나 투여 사례는 박씨와 20대 환자 A씨뿐이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A씨는 2021년 삼성서울병원에서 1주 간격으로 두눈 수술을, 박씨는 같은 해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한쪽눈 수술을 각각 받았다.

의학계 일각에서는 럭스터나가 조속히 급여에 등재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A씨 집도의인 김상진 삼성서울병원 안과 교수는 “시야가 좁아진 뒤 환자에게는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며 “미국뿐 아니라 영국·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럭스터나로 치료받은 환자 대부분의 실명 진행이 차단됐을 뿐 아니라 시야 확대 등의 효과까지 보였다”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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