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딸도 제사 지낼 수 있다”...가부장제 깨온 판결들 [법조인싸]
호주제 폐지, 여자도 종중원 인정 등
위헌 판단·판례 변경 법체계 수정해와
대법원에서 장남이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기존 판례를 바꾼 것입니다.
맏딸도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한을 얻는 날이 오기까지 그동안 사법부는 성평등한 세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1993년 결혼한 A씨는 딸 2명을 둔 상태에서 2006년에 부인이 아닌 다른 여성과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딸들은 A씨의 유해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1심과 2심에선 딸들이 졌습니다. 기존 판례는 적서 여부보다 성별을 우선시했기 때문입니다.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동상속인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적자와 서자를 불문하고 장남 혹은 장손자가, 아들이 없는 경우 장녀가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아들과 딸의 역할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대법원은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하고, 망인에 대한 경애와 추모의 의미가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제사용 재산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불합리하게 배제되는 점도 짚었습니다.
대법원은 “오늘날 전통적인 매장 대신 화장 등 장례방법이 다양해짐에 따라 피상속인 유해의 귀속 또는 관리가 더 문제 될 수 있는데, 이조차 남성 상속인에게 우선적으로 귀속된다는 것은 더더욱 그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은 제사주재자 선정의 새로운 기준으로 ‘직계비속, 최근친, 연장자’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연장자가 굳이 제사주재자가 돼야만 할까요?
역시나 비판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민유숙·김선수·노정희·이흥구 대법관은 “연장자가 우선해야 한다는 인식 역시 부계혈족 중심의 가계 계승 잔재에 불과하다”며 “망인에 대한 추모 감정에 있어 직계비속 중 연장자가 더 강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제사 주재자로 연장자가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고 봤습니다.
윤진수 서울대 로스쿨 명예교수도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이 종전 판례를 변경하는 방향은 맞지만 그 결론에는 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은 사람을 우선시해야 하는 근거가 불분명하다”며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에서 제사주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편견으로 가득했던 우리 법체계는 사법부의 결단으로 계속 수정돼왔습니다.
2005년 호주제 폐지가 대표적입니다.
여기선 헌법재판소가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 호주승계 순위, 혼인, 자녀 등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함으로써 많은 가족들이 불편과 고통을 겪고 있다”며 호주제를 폐지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현재 관점에선 이해가 안 가겠지만 당시 호주제 수호론자들은 전통과 가정이 무너진다고 강력하게 반발했거든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과거 판례는 성년의 남자만이 종중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젠 모계혈족 자손도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이 모씨(34·남)가 ‘용인 이씨’ 종중을 상대로 제기한 종원 지위 확인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이씨는 2013년 어머니를 따라 자신의 성·본을 ‘용인 이씨’로 변경하고 종중에 구성원으로 받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를 거부한 종중과 소송을 해 1·2·3심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습니다.
전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어떤 가족제도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반한다면 그 헌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며 “전통이란 역사성과 시대성을 띤 개념으로 현대적 의미로 포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오기도 하고 때론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온 사법부의 결단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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