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발톱 세우는 ‘솔저’ 홍준표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3. 5. 1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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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구시장 [사진 = 연합뉴스]
홍준표 대구 시장이 자신을 비판하는 여권인사들을 향해 “나는 썩은 시체나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가 아닌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살았다”고 한 것을 보고 ‘과연 홍준표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 홍준표다움이란 세상이 다 돌아서도, 그럴수록 더더욱,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하면서 ‘아 비루한 세상이여’하고 도리어 성 내는 극강의 자기애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정도 자기애적인 존재지만 홍 시장만큼 일관된 사람은 드물다. 상황이 악화되면 자기 확신이 무너지면서 겁먹고 주춤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홍 시장은 그런 식으로 풀죽지 않는다.

홍 시장의 이런 성격은 가난했던 그의 성장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가난은 자존심을 갉아먹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가난을 통해 자존심을 벼린다. 우호적이지 않은 초년운과 맞서 싸우다보면 저절로 거대한 자아가 만들어진다. 그런 사람은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자라 초년이 평탄했던 사람과는 기질적으로 다르다. 사람과 잘 어울리고 무해한 유머를 구사하고 가끔씩 실없어 보이기도 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중산층 아들 기질의 전형이다. 운명과 싸우다 큰 자아를 두게 된 홍 시장은 무리보다는 고독에서 편안을 느끼고 블랙유머에 능하고 실없어 보일때조차 뭔가 전략이 느껴지는 유형이다.

홍 시장은 이런 아웃사이더 기질에 뛰어난 두뇌와 표현력이라는 재능이 결합되면서 한국 정치에서 독특한 장르를 개척했다. 그는 팬덤이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중 한명이다. 그는 상황을 정확하게 짚고 어느 논평가보다 감칠맛 나게 표현한다. 유시민처럼 상대 감정을 도발하는 토론상대를 만나서도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우파 논객’이다. 말과 문장이 다 뛰어나다. 지난 대선때는 그 꼰대스러운 어투와 외모를 갖고서도 20~30대 젊은 층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이 소중한 재능, 페이소스 자체인 인생 역정을 생각하면 홍준표가 마음에 안들더라도 진심으로 미워하기는 어렵다.

홍준표의 재능은 투쟁적 상황에서 극대화되는 재능이다. 그가 여전히 광고하는 ‘모래시계 검사’ 이미지가 과대포장이라는 반론이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는 성공한 검사였다. 일신의 안위보다 자존심이 우선인 ‘거대 자아’가 그 성공의 동력이 됐을 것이라 믿는다. 성공한 검사들은 ‘너처럼 나쁜 놈이 감히 나를’하는 사고 체계를 갖고 있다. 정치인 홍준표의 성공법 역시 검사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명분론적으로 비판할수 있는 정신의 소유자다. 그 비판은 매우 신랄하고 타당하며 심지어 재미도 있다.

홍준표 팬덤은 그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간혹 강한 반격에 직면할 때가 있는데 이때가 홍준표의 진가가 발휘되는 때다. 그는 상대 반격의 두배만큼을 되갚아준다. ‘나는 잃는게 두렵지 않다. 너도 그러냐’고 씩 웃는 듯한 느낌이다. 서부 활극의 반항아처럼 말이다. 제도권의 ‘범생이’들중에 이런 홍준표에 맞서 끝까지 싸운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런데 관전자 입장에서 볼때 홍준표의 문제는 상대를 고르는 것이 얄미울 정도로 계산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홍 시장이 이기지 못할 상대를 향해 도발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그는 대체로 권력자와는 잘 지냈다. 지난 문재인 정권때 야당 대표를 하면서 대북문제 등을 놓고 몇차례 진지한 비판을 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평소 홍준표의 화력을 생각하면 매우 절제된 것이었다. 그의 화력은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는 절제되는 경향이 있다. 노무현 정부때 홍준표가 어떻게 투쟁했는지도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

홍 시장의 전투력이 가장 빛날 때는 내부 투쟁을 할 때다. 그는 당대표로 있을때 권좌에서 쫓겨난 박근혜를 당에서도 내쫓았다. 21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복당하는 과정에서 그의 복귀를 반대하는 새카만 정치후배들과 급을 가리지않고 싸웠다. 대구시장으로 내려간 이후엔 중앙정치에 훈수하면서 본격적인 내부비판자로 활동해오는 중이다.그러나 대구공항을 비판하는 윤희숙에 응대한 것에서 보듯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열려있지 않다. 어떤 비판에도 사력을 다해 싸운다. 김기현 대표처럼 감투는 크고 싸울 줄은 모르는 같은편 인사가 홍 시장에는 가장 편안한 상대로 보인다. 상대 체급이 되니 웬만큼 두들겨도 잔인하다는 비난을 들을 위험이 없고 반격은 예상가능한 범위안에 있고 반격당해도 두세배 갚아줄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좋은 전투력을 적을 향해서는 잘 안쓴다. 물론 홍 시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판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부 인사들을 상대로 싸울 때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공격했던 기억이 내겐 없다. 그러다 급기야 대구시장실에서 이 대표를 맞아 ‘정치력없는 윤 정부를 좀 도와주라’는 식으로 말했다. 당대 정치인중 말의 힘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홍 시장이 이 발언을 생각없이 했을리가 없다. 그것은 윤 대통령을 조롱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왜 홍준표는 이재명과는 안싸우고 윤 대통령은 조롱하고 싶은 걸까.

지난해 8월 이 칼럼에서 홍 시장을 존 르카레 소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캐릭터중 하나인 솔저에 빗대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솔저는 스스로 ‘하방’을 자처하고도 마음은 중앙 정계에 두고 있다. 대구시청에 앉아서 용산과 여의도를 시정처럼 논평한다. 때로는 팅커를 훈계하고 때로는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도 한다. 최근 들어선 대통령을 ‘쉴드치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그 깊은 뜻을 누가 알겠나. 그 논평은 대체로 옳고 재미도 있다. 그런데 정말 왜 그럴까. 솔저는 언제쯤 발톱을 확 세우고 나올까. 예전의 그가 그러했듯 말이다.” 그때 홍 시장은 윤 대통령을 존중했으나 지금은 마음이 바뀐 듯하다. 그래서마침내 발톱을 세우고 나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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