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멘터리] 마법 같은 영화만 살아남을 것인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을 보면서 새삼 기술(CG)의 발전에 외경심까지 들었습니다. "아바타"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요. 라디오헤드의 명곡 '크립'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인상적인 오프닝 씬은 진짜 라쿤을 데려다 찍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만)
크레글린과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민머리가죽 주름의 질감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꿰맨 자리가 아플까봐 내가 다 걱정이 되고, 노웨어에서 벌어지는 초반 격투씬의 매끈한 현실감도 '이제 이 시대의 영화가 CG로 표현할 수 없는 건 없구나' 하는 깨달음과 현타를 동시에 안겨줍니다.
"만달로리안" 시리즈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버추얼 스튜디오 시스템도 CG와 더불어 영화적 배경과 공간의 한계를 '자연스럽게' 뛰어넘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시장 한국 영화 빅4 중 "한산"과 "외계+인"은 말할 것도 없고 "비상선언"과 "헌트"처럼 사실적인 영화들도 실은 CG나 버추얼 프로덕션 같은 영화의 기술적 진보에 크게 힘입었습니다. (씨네멘터리 36회 '한국영화 성공의 숨은 주역, 시각효과와 특수효과'편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영화는 애초부터 눈속임이었습니다. 1초에 24프레임의 정지 사진으로 끊김없는 현실을 반영하고자 한 것부터가 인간 시력의 한계를 이용한 트릭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SF작가 아서 C. 클라크는 말했지요.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도 같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고요. 그의 말처럼, 영화는 이제 마법이 되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는 개봉 아흐레되는 날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며 올해 개봉한 영화 중 흥행 3위로 우뚝 섰습니다. '드디어 마블이 돌아왔다', '아니다, "가오갤" 시리즈는 이제 끝났고 제임스 건도 떠난다' 등등 설왕설래 속에서 "가오갤"의 선전을 보면서 영화의 마법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박스 오피스를 한번 쳐다보았습니다.
지난해에는 흥행 톱10 중 8편이 속편일 정도로 속편이 휩쓴 한 해였다면, 올해 상반기에는 "스즈메의 문단속(535만)"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463만)"가 1, 2위를 차지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이 극장가를 주도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초강세는 공교롭습니다. 그런데 이후 순위, 즉 3위 "아바타:물의 길(개봉은 지난해)", 4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5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6위 "존 윅4"라는 순위표를 응시하다보면 뭔가 짚힙니다.
이 영화들, 대부분 마법 같은 영화들입니다. 비주얼도 마법 같지만 내용도 마법과 게임적 세계에 기반합니다. 지금까지의 영화가 어떤 사태와 현상을 해석해내는 하나의 세계관(worldview)이었다면, 마법 시대의 영화는 특정 콘텐츠가 표방한 세계관(universe, 설정)을 충실히 재현해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가오갤"도 "존 윅"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도 주어진 마법적 또는 게임적 세계관 내의 규칙과 정합성을 따라가며 영화가 전개됩니다. 왜, 무엇을 위해 그런 규칙이 도입돼야 하는지 배경을 캐묻기보다는 일단 설정을 받아들이고 그 틀 안에서 얼마나 재미있게 기승전결을 구사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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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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